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우리는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려보냈다. 이제 이들에게 권리를 주자는 ‘생태법인’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연합뉴스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현대 동물운동을 촉발한 동물권 이론의 고전 <동물해방>의 전면 개정판이 반세기 만에 나왔다.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동물운동이 이룩한 성과와 과제가 추가됐다고 한다.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가 이 책을 쓴 게 1975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동물보호’ 운동은 인간의 동정과 시혜에 기댔을 뿐 동물이 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 책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이라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고 꼬집었는데,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 철학을 논증해 당당하게 뒤 문장을 빼버린 것이다.
물론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동물에게 투표권을 주자거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적극적 권리와 달리 동물권은 소극적 권리다.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부당하게 감금되지 않을 권리, 서식지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동물운동은 급성장했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조처가 법률과 제도에 반영됐다.
그럼에도 <동물해방>은 한계가 있었다. 동물의 권리, 그 자체를 갖게 할 정치적 기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책 뒤에 첨부된 ‘채식 레시피’가 유일한 대안이냐는 힐난도 받았다. (이번 전면개정판에서는 최신의 채식 레시피를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경로가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동물권이 철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으로 지평을 넓히면서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스티븐 와이즈는 ‘비인간권리 프로젝트’(NhRP)라는 단체를 설립해, 동물원과 실험실에 갇힌 침팬지·코끼리 등의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하고 있다. 인신보호영장이란 부당하게 감금된 이를 법원이 풀어주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스티븐 와이즈는 영장을 청구하며 동물 석방을 요구한다. 법원은 그를 번번이 재판정 밖으로 돌려보내고 있지만, 한번은 뉴욕주 대법원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직 재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 시민만이 미국 헌법에 보장된 법적 권리 전체를 누릴 수 있었다”며 그의 소송이 역사의 정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판결문에 상기시키기도 했다.
스티븐 와이즈가 개체 중심의 동물권 논의에 기초한다면, 생태계의 연결 관계를 중시하는 환경·원주민 운동을 중심으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흐름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의 황거누이강이다. 2017년 황거누이강법 제정으로 이 강의 강물, 강바닥, 동식물은 법적 권리를 갖게 됐다.
강이 법적 권리를 갖는다니, 언뜻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럼, ‘삼성전자’가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는 건 이해 가는가? 만약 당신이 삼성전자 본사 간판에 페인트를 뿌린다면, 삼성전자는 당신에게 손해배상소송을 걸 수 있다. 삼성전자가 사람이 아닌데도!
이는 삼성전자가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인격’(권리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법률은 (비인간동물은 빼고) 사람은 물론 기업과 단체한테 법인격을 주고 있다. 뉴질랜드는 황거누이강에 이런 법인 자격을 주고, 실질적인 권리를 갖도록 각각 정부와 황거누이부족이 지정한 후견인이 법인 사무국을 두고 활동하도록 했다. 황거누이강은 후견인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법적으로 맞설 수 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도민보고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생태법인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지난 3월 법률·과학·행정 전문가로 꾸려진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이 구성돼 실현 방안을 연구 중이다.
두가지 경로를 상정하고 있다. 첫째는 기존 제주도특별법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법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하면, 황거누이강처럼 남방큰돌고래가 실질적인 권리를 갖게 된다. 둘째는 제주도 조례를 통해 지정하는 방안이다. 법적 구속력은 약하겠지만, 수월하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21일 “이번 가을까지 초안을 만들어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공론화 작업을 벌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은 그저 한 종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이를 제안한 진희종 제주대 강사(언론홍보학)는 말한다. 생태법인은 더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인간이 자연과 협력하는 관계로 새출발하는 위대한 이정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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