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사진 뒤쪽)이 지난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강희철ㅣ논설위원
어떤 브로맨스는 아름답다. ‘손-케’(손흥민과 헤리 케인) 듀오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도 재해석하면 브로맨스다. 그러나 어떤 브로맨스는 추하다.
감사원의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최근 놀라운 브로맨스를 시전했다. 지난달 29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결과와 관련한 국회 법사위 현안질의에 출석해서다. 궤변과 억지로 시간을 흘려보내며 환상의 케미를 선보였다. 그날의 신스틸러 유병호의 “심플하게 답변하십시오”라는 쪽지는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실상은 요즘 유행어로 ‘이권 카르텔’이고, 법률용어로는 영락없는 ‘공동정범’이다. “국회에서 나온 것만 정리해도 공소장 그냥 쓰겠던데?” 중계를 죽 지켜봤다는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전화 너머에서 웃었다.
감사위원의 결재 승인을 조작했다. 주무 감사위원이 승인하지 않았는데, 한 것처럼 위조한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 관리 부서에 요청했고, (전자결재 시스템에) ‘승인’으로 뜨게 됐다.”(최재해) 악수를 가리려고 자충수를 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전 전 위원장을 고발했다.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고발장부터 보냈다. 당시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제보가 있었다”며 큰소리쳤으나 결과는 달랐다. 정통 특수통 출신인 주심 감사위원이 감사원 사무처의 고발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140쪽 분량의 검토보고서를 냈고,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가 이를 받아들여 무혐의(‘불문’) 결정을 내렸다.
전 전 위원장 고발이 원인 무효라니, 큰 사달이 날 판이었다. 감사보고서를 얼기설기 고치고 꿰맨 뒤 확정·공개를 서둘렀다. 감사위원 합의 절차를 건너뛰려고 전산 조작을 감행한 것이다. “(감사위원들이) 전 전 위원장의 치명적인 중범죄 해당 사항만 다 삭제했다.” 유병호는 엉뚱한 한마디로 ‘동기’를 누설했다.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이 한 일은 실형이 선고될 중범죄에 해당한다. 전자정부법 위반, 공전자기록 위·변작,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등. 국회 발언이니 자백이나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 관련 허위 보도자료 배포도 있다. 감사위원회의는 지난 1월 연내 감사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무처가 전면 부인하는 자료를 만들어 뿌렸다.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이 역시 중대범죄다.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걸린다.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한 국정원 관련자들을 기소해 유죄 판례를 받아낸 이가 검사 윤석열이다. 단죄받아 마땅한 잘못을 감추는 것만큼 중대한 ‘이권’이 또 있을까.
두 사람이 뭉친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최재해는 ‘출신 성분’이 취약하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 파견에 이어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행정관을 지냈다. 감사원장 임명장도 문 대통령에게 받았다. 보수 정권 눈 밖에 날 이력인데, 4년 임기의 반환점도 못 돌았다. 이럴 때는 의심을 녹일 ‘공물’이 필요한 법이다. 실질적 인사권을 유병호 손에 쥐여 줘 이른바 ‘타이거’(유병호 파벌)의 요직 독식을 보장하고, 최재해는 ‘용산’이 흡족해 할 실적을 상납받는 공생 관계라고 감사원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최재해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일찌감치 공언했던 것이다. 유병호가 “(감사원의) 결재승인권자는 저”라며, 감사위원회의의 전 전 위원장 무혐의 결정을 “범죄”라고 거침없이 매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권력을 나눠 갖고 범법 사실을 덮으려는 두 사람으로 인해 독립적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이들의 사조직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헌법정신을 무너뜨리는 이권 카르텔,” 윤 대통령의 이 말은 최재해·유병호에게 딱 들어맞는다. “카르텔에 맞서 싸우라”고 독려까지 한 대통령이 정작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의 불법과 전횡에는 눈을 감고 있다. 평범한 사람도 말 따로 행동 따로면 신뢰받지 못한다. 이 와중에 대통령실은 감사관 50명 증원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설상가상이다.
두 사람은 공수처에 또 고발됐다. 법사위 중계 화면이 그 자체로 증거다. 감사원엔 감사위원회의 녹음파일 등 관련 자료가 모두 보존돼 있다. 그런데도 10건 넘는 고발장을 들고만 앉았다. 공수처와 검찰 중 누가 먼저 움직일까. 권력의 손절 의사가 감지되거나 힘이 빠지면 검찰의 시간이 시작된다. 천하의 우병우, 조국, 이상득도 비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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