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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금융, 그 낯설고 어려운 세계

등록 2023-07-27 18:26수정 2023-07-28 02:3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남지현 | 금융팀 기자

“기자님, 잘 아시겠지만….”

금융권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친절한 금융사 홍보팀 직원이 뭘 잘 모르는 기자를 배려하며 덧붙이는 쿠션어일 텐데, 그때마다 ‘아니요, 사실 잘 모릅니다’라며 설명을 빙자한 과외를 부탁하며 괴롭히길 11개월째다.

금융팀에 발령받은 첫날, 타사 선배가 격려 삼아 건넨 “난 처음 왔을 때 여신·수신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라는 말에 전화를 끊고 조용히 여신·수신을 포털에 검색하던 때도 있었더랜다. 참고로 여신은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출을, 수신은 예·적금 등 고객 돈을 받는 걸 말한다.

부끄러운 경험담을 늘어놓은 건 나만의 얘기가 아니라서다. 많은 이들에게 금융은 낯설고 어려운 세계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2018년 발표한 ‘세계 금융이해력 조사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 성인 중 금융이해력을 갖춘 건 33%뿐이라고 한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57%)·영국(67%)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43%)이나 미얀마(52%)나 우간다(34%)보다도 낮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실시한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서도 평균 금융이해력은 66.5점 수준에 그쳤다. 2020년(65.1점)보다는 조금 높아졌지만, 설문조사를 개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금융교육국제네트워크(INFE)가 제시한 최소목표점수(66.7점)에는 못 미친다.

문제는 금융이해도가 연령과 계층에 따라 양극화돼 있다는 점이다.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 30∼50대는 평균을 넘겼지만, 20대(65.8점)와 60대(64.4점)·70대(61.1점)는 평균을 밑돌았다. 저소득층(63.2점)과 고소득층(68.7점), 고졸 미만(59.3점)과 대졸 이상(68.7점)은 큰 격차를 보였다. 보편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금융 공부는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기본적인 개념을 먼저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일단 어려운 한자어나 영단어가 난무한다. 기본서 몇권은 떼고 포털 검색도 수없이 해야 하는데, 혼자서 이렇게 끈질기게 금융을 공부할 여력이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운 좋게 경제관념이 투철한 부모에게 조기교육을 받았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다수는 ‘금융 문맹’으로 남을 위험이 크다.

금융은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돈을 벌고 누구나 돈을 쓴다. 살다 보면 대출도 받는다. 불법 대출의 꼬임에 넘어가 큰 곤욕을 치를 수도, 내 조건에 맞는 정책 대출을 받아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 필수인 금융 공부를 개인의 환경과 의지에 맡겨둬도 되는 걸까?

‘영끌족’의 눈물과 ‘빚투’ 불개미의 “가즈아”라는 외침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가계부채 관리에 고심하는 정부는 금융교육 강화에도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현재 고1 공통과목인 통합사회 교과 한 단원에서 금융을 겉핥기식으로 다루는 게 전부다. 다행히 지난해 교육과정이 개정되며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별도 과목이 신설됐다. 그러나 선택과목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아직도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게 하는 교실에서 담보와 금리의 관계를 가르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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