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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창곤의 정담] 사용자단체, 권한과 영향력만큼 ‘책임’도 다하고 있는가?

등록 2023-08-01 19:05수정 2023-08-02 02:04

| 이창곤의 정담 24 _사용자단체 2
우리가 짚어야 할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용자단체의 특성이 있다. 배타적 경영권주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주요 단체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도 있다. 사용자단체가 처음 출현한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데다 사용자단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국내의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간의 균형을 취하고, 또 기업별 교섭보다는 초기업별 단체교섭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는 강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낳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재계 단체 지도부들이 지난 2월2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단상 오른쪽부터 손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김고현 한국무역협회 전무. 연합뉴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재계 단체 지도부들이 지난 2월2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단상 오른쪽부터 손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김고현 한국무역협회 전무. 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용자단체다. 이 단체의 수장인 손경식 경총 회장은 정부의 주요 위원회 위원이다. 그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국무총리 소속 사회보장위원회에 참가한다. 전자는 노·사·정 간의 사회적대화의 장이며, 후자는 사회보장 관련 정책을 심의하는 곳이다. 손 회장은 기획재정부에 딸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이기도 하다.

씨제이(CJ)와 CJ제일제당의 회장인 그는 정부의 조세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이 위원회에서 기재부 장관과 함께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총 사무국을 이끄는 이동근 상근 부회장도 고용정책심의회와 국가기술자격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이다. 재계의 임의단체인 경총의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은 어떤 자격으로 대한민국의 조세 및 노동복지정책을 논하는 정책 협의의 장에 ‘정책행위자’로서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이들의 지위는 노조와의 대칭적 차원에서 사용자단체 또는 ‘사용자를 대표하는 자’로서 주어진 것이다.

손 회장은 최근 필자와의 대화에서 경총은 약 40여개의 정부위원회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노사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등 노사관계와 노동정책 분야는 물론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건강보험료와 각종 급여기준을 심의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노동과 보건복지 영역까지 실로 다종다양하다.

손 회장은 경총의 요즘 관심 이슈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규제개선, 최저임금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킨다”고 주장했다. “손배·가압류를 무기로 노동기본권을 유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노조 쪽 견해와 상반되는 주장이다. 손 회장은 이런 견해를 주요 정책결정자인 “정부·여당 고위 인사들과의 공식 또는 비공식 접촉을 통해서도 전한다”고 덧붙였다.

기실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는 재계 단체는 경총만이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주요 사업자단체들도 적잖다. 예컨대, 최저임금위원회에선 경총과 함께 대한상의, 중기중앙회 등도 ‘사용자’를 대표하는 일원이다. 이들은 최근 이 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해 노조의 뜻에 맞섰다. 이들 ‘경제5단체’외의 많은 재계 단체도 정부위원회 등 정부의 정책과정에 참여한다.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고용보험심사위원회와 노동위원회처럼 ‘사용자를 대표하는 자’라고 적시된 법령에 따른 경우도 있지만, 이런 법적 명시 없이 정부가 노조와의 대칭적인 차원에서 권한을 부여한 경우도 있다. 전자인 첫 번째 유형은 처음부터 사용자단체로 설립된 곳이다.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각기 금속노조, 금융노조 등 초기업 노조에 맞서 단체교섭을 위한 기구로 결성됐다. 후자인 두 번째 유형은 사업자단체이면서 사용자단체로서 성격을 지닌 곳이다.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 시도버스운송사업조합,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 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체교섭 당사자의 성격을 지니면 사용자단체, 회원사인 사업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해 활동하는 곳은 사업자단체”라며, 개념상 둘로 구분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구분이 모호하고 적절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사업자단체이면서 사용자 단체성을 띤 이중적 성격의 재계 단체가 폭넓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유의 기능인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아도 정부위원회에 참가해 정책행위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면 사업자단체도 사실상 노동관계의 당사자인 사용자단체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체교섭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만이 사용자단체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적잖은 사업자단체는 사실상 사용자단체다.

흔히 사용자단체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업종별 협약의 교섭과 체결이다. 이 역할은 노사 간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관한 규범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는 사용자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정직한 사용자를 보호하는 성격도 지닌다. 또 하나는 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이다. 특히 경총이나 전경련, 대한상의 같은 중앙 차원의 사용자단체 또는 사업자단체에선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를 위해 경총과 같은 몇몇 재계 단체는 지도부의 움직임과 함께 이 역할을 전담하는 조직을 두고 있다. 다만, 주요 대기업은 속칭 ‘대관 업무’를 벌이는 자체 조직을 꾸려 직접 ‘정책 로비’를 벌인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란 시각에서 사용자단체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용자단체든, 사업자단체든 한국의 재계 단체는 국가의 정책 논의과정에 참여해 나름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 또한 다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는 필자에게 “경총만 놓고 봐도 최저임금위원회와 노동위원회 등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해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왜 사용자로서 마땅히 참여해야 할 초기업 단체교섭에는 적극 임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그는 “사용자단체가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가해 의사결정 과정에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단체교섭 등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같이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그런 책임을 부담할 생각이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권한도 내려놓아야 권한과 책임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연구원의 이창근 연구위원도 “실제로는 사용자단체이면서 사업자단체라는 형식적 명분에 기대어 노조와의 어떤 협의도 교섭도 하지 않는 사용자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가하는 것도 거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용자들의 인식과 태도 전환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사용자단체를 논구할 때 서구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어야할 대목이다. 바로 “배타적 경영권주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더불어 경총과 전경련 등 주요 단체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용자단체가 처음 출현한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데다 사용자단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한국의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간의 균형을 취하고, 기업별 교섭보다는 초기업별 단체교섭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는 강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낳는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사용자단체에 뚜렷한 압력을 가할 수 있을까?

그 결정적 주체 중 하나는 정부일 것이다. 정부는 초기업교섭제도를 촉진하게 하는 여러 제도적 지원이라는 노동정책을 통해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사이에 균형을 지니도록 강제할 수 있다. 노사 사이의 적극적이고 균형적 중재자로서 정부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경계할 지점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노동삼권을 제약하면서 재계와 결탁하여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국가코포라티즘이다. 경제성장을 내세워 기업의 이해를 국가가 직접 대변하고 노동을 배제하거나 탄압하는 방식이다. 이 잘못된 국가의 역할인 개발독재의 유산이 다시 우리 사회에 어른거린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또 하나는 노조의 긍정적 압력이다. 노동운동의 압력은 유사 이래 사용자단체를 탄생케 하고 변화케 하는 요인이었다. 예컨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거대노조들이 산별노조에 합류할 때 사용자단체들이 노사관계 당사자로서 나설 수 있는 압력도 커질 것은 불문가지이다.

“사용자단체를 연구하면 할수록 답답하고 실망도 커졌다”고 토로한 국내의 드문 사용자단체 연구자인 전인 영남대 교수는 “사용자단체가 좀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역할을 하려면, 단체의 구성원인 사용자들이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단체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도 중요하게 고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입김이나 그에 따른 사무국 중심의 의사결정이 아닌 단체 구성원인 사용자 일반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되는 구조도 사용자단체의 대표성과 응집성을 높여 바람직한 역할을 하게끔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지적이다.

※참고문헌: 이정희, 전인외, 사용자단체 의의와 역할(2020)/이창근, 박제성외, 사업자단체의 ‘사용자단체성’ 연구(2019)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와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와 복지정치의 혁신 없이는 좋은 복지국가도, 질 높은 민주주의도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연재칼럼 집필에 매진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복지의 문법>(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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