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총경이 지난 7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경찰기념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경 8년 차인 자신을 112상황팀장에 임명한 것은 ‘보복인사’라고 주장하며 “사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고] 이상식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설립에 반발해 총경 회의를 주도했다가 정직 징계를 받은 뒤 이번 인사에서 경남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팀장으로 발령된 류삼영 총경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사직의 변에서 “최근 1년간 일련의 사태로 경찰 중립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려워 사직을 결심하게 됐다. 저의 사직을 끝으로 더 이상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보복 인사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월 경찰 총경급 인사에서 총경 회의 참석자들이 좌표찍기식으로 줄줄이 좌천됐다. 현장 참석자 50여명 중 상당수가 시·도경찰청 112상황실이나 경찰교육기관 등 한직으로 발령 났다. 총경보다 한 계급 낮은 경정이 맡던 자리에 발령 난 경우도 있다. 여론을 의식해 한 템포 늦췄지만 류 총경의 112 상황팀장 발령은 문책성·보복성 인사임이 틀림없다.
왜 유독 경찰 간부들 회동에만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가? 이제껏 전국 검사장·평검사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불이익을 받은 이는 없었다. 작년 수사-기소 분리법안을 둘러싼 검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현장 상황을 책임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잘못된 법이 잘못된 절차를 통해 통과됐을 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말할 의무’가 검찰에만 있고 경찰에는 없나. 독선이고 내로남불 아닌가?
현 정권이 힘으로 경찰을 윽박지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정권교체 후 대규모 물갈이 인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치안정감 진급 대상자 전원을 개별 면담해 충성 서약을 받고 줄세우기를 했다. 치안감 인사에서는 인사안이 번복되는 소동이 벌어지자 윤 대통령이 직접 ‘국기문란’ 운운하며 경찰을 겁박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프락치 의혹이 불거진 김순호를 경찰국장에 임명하고 치안정감으로 승진시키는가 하면 아들의 학폭 사건으로 공분을 산 정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하는 등 경찰조직을 욕되게 했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성만이 살길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제 그도 모자라 수뇌부가 아닌 경찰서장급 인사에서도 정권과의 거리에 따라 대놓고 표가 나는 인사를 해치운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줄세우기·뒤흔들기가 경찰조직에 끼친 해악은 크다. 자존심이 상하고 사기가 저하된 조직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의 총체적 실패가 대표적이다. 112는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는 시민 호소를 외면했으며, 촘촘하다던 경찰의 예고정보망도 작동하지 않았다. 보고와 지휘 체계도 엉망이었다. 월드컵 거리응원, 촛불집회 등을 문제없이 관리해왔던 역량이 와해된 것이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경찰의 부실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방 붕괴의 위험 신호가 빗발쳤음에도 교통통제나 사고현장 출동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한때 ‘투입 대비 산출 최고’라는 평을 들었던 대한민국 치안시스템은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일에는 놀랍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하던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강제 연행해 유혈사태를 빚었고, 분신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추모공간을 강제 철거하여 노동자들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공공에 명백한 위험을 끼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마저 무시하고 시위대의 야간 노숙을 강제 해산시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이제 외견상으로는 완벽하게 윤석열 정권에 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현 정권은 아무래도 경찰보다는 검찰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으로 경찰은 건설폭력, 보조금 횡령 같은 품이 많이 드는 수사에 집중하고 검찰은 정치·기업·금융·부패 범죄 등에 대한 수사로 정권 안위에 올인할 모양새다. 법무부가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사실상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수사준칙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입법예고한 것은 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대체 경찰을 어쩌려는 것일까. 경찰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나 경찰은 역경을 딛고 성장해왔다.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다. 튼튼하게 지역과 시민 속에 뿌리박고 있다. 그들은 경찰장악과 무시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리고 권력을 멀리하고 시민을 가까이할 때 신뢰받는다는 것을 안다. 이제 시민들이 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