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와 고 이용마 문화방송(MBC) 기자. 연합뉴스, 문화방송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4년 전 오늘(8월23일), 문화방송 앞에서 노상 장례식이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복막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이용마 기자가 젊은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남기고 세상과 작별하는 날이었다. 삼성 비리를 끈질기게 파헤친 근성 있는 기자였고 권력 엘리트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한 치의 양보도 없던
언론인이었다. 그는 노조 홍보국장으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이끌다가 ‘사내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해고 기간 병을 얻은 그는 5년9개월 만에 복직할 때 이미 손쓸 수 없는 말기암 환자였다. 그의 소망은 “엠비시(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를 다시 힘차게 외치는 것이었으나 그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2012년 문화방송 파업 당시 해직됐다가 2017년 복직한 이용마 기자의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용마 기자를 사지로 내몬 것은 치밀하고 조직적인 언론 와해 공작이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이란 문건을 작성했는데, ‘(1) 인적 쇄신과 프로그램 퇴출 (2) 노조 무력화 (3) 엠비시 민영화’라는 3단계 방송 장악 전략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자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사자인 이동관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한다. “제가 만약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서 어떤 지시, 실행 그리고 분명한 결과가 나왔었다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그의 표정엔 자못 여유가 넘친다.
실은 나도 그게 궁금하다. 어떻게 이동관은 다시 공직에 호명될 수 있었을까? 2017년, 홍보수석의 지휘 아래 국정원 기획안대로 언론 장악 프로젝트가 집행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곳이 서울중앙지검이다. 당시 지검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방통위원장에 지명했으니 이동관의 언론 장악 전력은 범죄적 흠결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었다고 봐야 할까?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를 체포하고 고문하던 노덕술이 해방 후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 발탁되고 이승만 정부 아래서 승승장구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이승만은 권력 안정을 위해서 ‘빨갱이 사냥’이 필요했고
그 일을 믿고 맡길 ‘기술자’를 원했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조차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을 맞고 곤욕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이승만의 충견으로 총애받던 노덕술은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나라에 요긴하게 쓰일 기술자’라는 이유로 풀려났고 서훈의 근거도 미상인 채로 화랑 및 충무무공훈장을 3개나 받았다. 화려한 부활이다. 처벌해 마땅한 구시대 인사를 요직에 발탁해 그 전문성을 재활용하는 ‘지도자의 식견’이 놀라울 뿐이다.
막장 드라마 같은 정치는 복고풍 레퍼토리를 무한 반복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다”고 맹공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논하거나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 공산당, 전체주의자, 심지어 패륜아가 된다. 윤석열의 자유주의 안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의견만 자유롭다. ‘이 정부의 모든 것은 완벽하다!’
이동관은 대통령의 사상적 동반자로서 손색이 없다.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뉴라이트’ 특집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 바람을 일으킨 자칭 ‘스핀 닥터’답게 이동관은 낡은 반공주의 뼈대에 자유주의 액세서리를 달아 옛 물건을 리모델링하는 데 명수다. 문제는 그 논리가 실제와 맞지 않아 자가당착으로 종종 스텝이 꼬인다는 데 있다.
이동관은 ‘검증하고 의심하고 확인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진실을 전달’하는 게 언론의 본령이고, 정파적 논리를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게 ‘공산당 기관지’라고 말했는데, 그게 진심이라면 그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공산당 기관지로 선포해야 마땅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동관 지명부터 인사청문회 직전까지의 언론 보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동관 관련 보도량이 가장 적은 매체가 조중동이고 ‘검증, 의심, 확인’하는 절차 없이 후보자 입장만 그대로 퍼 나른 비율이 제일 높은 매체 역시 조중동이다. 이동관이 말하는 공산당 기관지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언론에만 해당하는 말인가? 그건 자유주의가 아니라 매카시즘이다.
다시 이용마 기자를 생각한다. 그의 어린 두 아들이 성인이 되어 읽기를 바라며 투병 기간 마지막 혼을 담아 쓴 책 제목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이다. 이용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송 장악의 총사령관 이동관이 다시 컴백하는 요지경 세상, 그래도 낙담하진 말자. 그의 아들들에게 네 아버지가 한 말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정신 차리고 잘 버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