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농악패들이 한빛탑을 맴돌며 엑스포 개회를 축하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승미|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이렇게 작았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았을 때의 첫인상이다. 나는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대전 한빛탑에서 다시 느끼고 있었다. 독야청청 우뚝 높이 솟아 있던 3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인근 아파트들을 올려다봐야 했으니까. 그러나 내 기억보다 좁은 추억 어린 운동장이 시시해지지 않듯이, 더는 대전 최고 건물이 아니래도 한빛탑이 무의미해지지는 않는다.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를 기념하며 세워진 93m 높이 한빛탑은 엑스포 전시관 대부분이 사라진 지금도 대전의 대표 상징으로 남아 있다.
대전 엑스포에 관한 기억을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한다. “뙤약볕에 무더위로 끈적이고 힘들었죠. 전시장은 고작 두개 봤던가?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대기 줄 끝이 안 보였다니까요.” 심지어 미아보호소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다며 씩 웃는 회사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덥고 힘들었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다들 미소를 짓는 건 왜일까? 생전 처음 보는 터치스크린, 운전자 없이 움직이던 무인 자동차, 자동차가 변신한 말하는 로봇 등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기함이 가득한 전시도 놀라웠지만, 잠시 엿보았던 미래 신기술이 차츰 현실로 이루어지는 점이 흐뭇한 건 아닐까.
지난달 20일 대전e스포츠경기장에서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창립 3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누리집 갈무리
평일인 지난달 20일 한빛탑을 방문한 이유는 추억 여행이 아니라 출장 때문이었다. 대전 엑스포와 동갑인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의 서른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학술대회와 기념식에 회원으로 참석했다. 30년이라니, 갓난아이가 의젓한 어른이 될 시간 아닌가. 강산이 변해도 세번은 변할 기간이다. 대전도, 여성 과학기술인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3년 전시관이던 정부관 건물은 이제 대전 이(e)-스포츠경기장이 되었고, 230명이던 여성과학기술인회 회원 수는 이제 2100여명이다. 30주년을 맞아 대전 e-스포츠경기장에서 열린 성대한 기념식은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 연상되는 내부 구조 덕분인지 엄숙하다기보다는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나로서는 아이들이 e-스포츠를 관람하러 가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한시간 가까이 이어질 정도로 많았던 각계각층 인사의 축사들도 고마웠지만, 초대부터 현 14대까지 지난 30년간 전·현 회장 모두가 한명도 빠짐없이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점이 내게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후배들을 위해 하나씩 세상을 바꿔온 선배 여성 과학자들의 애정과 진심이 다시 한번 강하게 느껴졌다.
나의 직장 선배이기도 한 정광화 3, 4대 회장은 인터뷰에서, 1978년 입사했을 때 대덕연구단지를 통틀어 여성 선임연구원은 오세화 초대 회장님과 자신 이렇게 단둘이었다고 했다. 당대 대한민국 과학계에서 ‘여성 선임연구원’이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동그란 사각형’처럼 일종의 모순처럼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으리라. 김치는 물론이려니와 된장이나 간장까지도 대개는 집에서 만들어 먹던 시절이 아닌가. 어린이집도 보편화하지 않은 그 시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서 소수자로 생활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용감했다. 홀로 버티기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자신들의 뒤를 이을 여성 과학기술인 관련 법 제정 필요성과 정책 제안 등 미래의 후배를 위해 직접 행동했다. 1993년 9월20일, 마침내 각 기관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적으로 육아를 담당하도록 여겨지던 여성이 과학자로서 일하기 위해 필수적인 영유아 보육시설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하여 1995년 대덕특구어린이집이 건립됐다. 나도 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키웠으니 ‘아이 넷 직장맘’이 가능했던 건 모두 선배들 덕분이다. 아이 넷 직장맘이 더는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일과 생활의 균형이 보편화한 미래를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