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의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강희철 I 논설위원
이런 수사는 처음 본다고들 한다. 한 사람을 겨냥한 1년5개월 초장기 수사는 유례가 없고, 투입된 검사의 규모(인풋) 대비 결과(아웃풋)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수부 출신 검찰 선배들이 후배들의 ‘이재명 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구속영장은 기각을 당했다. 대장동 의혹의 본령인 ‘428억 뇌물 약정’은 여태 기소를 못 했다. 이 대표를 지난 3월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며 ‘신속한 수사’를 다짐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배임 입증의 핵심인 ‘고의’는 공란인 채로 남아 있다. “(투입된) 검사가 대체 몇명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냐”라든가 “증거를 따라가는 수사 맞냐”는 ‘선배’들의 험구가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당 운영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상식이다. 그래서 그 당 지도부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구속영장 기각 전후로 보여준 전근대적 행태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체포안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이 대표 체포안 가결 직후 단죄를 공언했다. ‘너희 중에 마녀가 있구나?!’ 색출 소동이 벌어졌다. 의심받는 ‘혐의자’는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무기명 비밀투표’ 한 기표 용지를 공개하는 의원들이 나타났다. 사법부 압박용 ‘기각 탄원서’를 내라니 ‘가결 의심표’보다 많은 의원이 허겁지겁 써냈다. 마녀로 찍히지 않으려면 십자가 밟기라도 하라는 투다. 자유투표에 맡기지 않았냐,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법조항(국회법 제114조의2)이 있지 않냐는 항변은 댓바람에 무시됐다.
영장이 기각되자 지도부는 더 거칠어졌다. ‘가결파’로 의심하는 의원들을 ‘외상값’을 갚지 않은 ‘고름’이라 호칭했다.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무자비한 응징을 다짐하는 이 뒷골목 언어에는 혐오와 비하의 적대 감정이 흘러넘친다. 경고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가 지나기 무섭게 새 원내대표가 말했다. “당원들이 직접 제소할 경우 윤리심판원에서 다룰 수 있다.” 외상값 청구는 이제 강성 팬덤인 ‘개딸’(개혁의 딸)들 손에 맡겨졌다. 다음 수순은 내년 총선의 공천 배제일 것이다.
‘적전분열’ 엄단 구호는 내부의 ‘비민주’를 합리화하는 손쉬운 핑계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축출을 ‘내부 총질러’ 퇴출로 포장했다. 민주당은 그때 국민의힘이 윤석열의 사당이 됐다고, 전체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럼 지금 이견불허의 억압과 일사불란의 폭력이 횡행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뭐라고 지칭해야 하나.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 극단주의를 배격하며 소통과 연대,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한다.” 민주당의 ‘강령’으로는 민주당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이 대표로 인해 생겨났다. 대선과 지난 6월 연거푸 약속한 대로 체포안 가결을 촉구했다면, 당당히 걸어나가 기각을 받아냈다면, ‘클라스’가 다른 정치인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가결=해당, 부결=구당’ 식의 저급한 갈라치기 소동이 일어났을 리도 없다. 물론 결과론이다. 검사 수십명이 자나 깨나 자신의 목을 겨눈다고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생존 본능에 몸을 맡길 법하다.
하지만, 일찍이 노무현이 말했다. “대의가 있고, 그다음에 가능성도 있다.”(‘성공과 좌절’) 이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그런 ‘노 대통령님의 길을 따라 끝까지 가겠다’고 자필로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사정변경 사유’ 한 줄 없이 체포안 부결을 호소했다. 구속 모면이라는 눈앞의 이익과 정치인의 생명이라는 신뢰를 맞바꿨다. “국민항쟁”을 앞세운 단식에 ‘방탄’ 딱지를 붙인 건 이 대표 자신이다. 당은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 노골적인 반민주적 행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동의라고 했다.
이 대표에게 ‘결자해지’의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공당이다. 대표는 ‘오너’가 아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민주당(또는 열린우리당)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사당화는 박근혜가 망한 길이다. ‘이견’을 ‘이적’으로 갈라친 새누리당의 ‘비박 처단’ 공천이 2016년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모두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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