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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담배규제의 끝판왕, 노담사피엔스

등록 2023-10-17 15:59수정 2023-10-17 18:42

김재욱 화백
김재욱 화백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 4일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만 14살 이하 청소년들부터 ‘비흡연 세대’로 만든다는 야심찬 구상을 발표했다. 현재 18살인 담배 구매 가능 연령을 해마다 1년씩 올려, 2040년 이후로는 청년세대의 흡연이 사실상 중단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뉴질랜드 의회가 2009년 이후 출생자에게 평생 담배를 살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유사한 조처다. 초강력 규제인 만큼 갈 길은 멀다. 불법 경로를 통한 담배 구매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데다 출생연도에 따라 제품 구매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정당하느냐는 논란이 벌써부터 뜨겁다.

각국 정부가 더 강력한 담배 규제에 골몰하는 것은 여전히 흡연으로 인한 사망이 적지 않고 의료비 지출도 큰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직간접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간 871만명(2019년)에 달한다.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과 사회·경제적 손실도 1조8500억달러(약 2500조원)나 되는데, 이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회원국의 담배 규제 이행 수준을 주기적으로 평가한다. △흡연 실태조사 △금연구역 지정 △금연지원 서비스 △담배 위험성 경고 △담배 광고 규제 △담뱃세 인상 등 6가지 규제가 평가 대상이다. 금연 선도국인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담뱃갑에서 경고 그림 면적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영구적 담배 판매 금지는 기존 규제를 뛰어넘는 초강력 조처다. 흡연자 대부분이 20살 이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는 점에 착안해, 담배 없는 청년기를 보내도록 한다는 발상이다. 일부 국가에선 담배 꽁초를 제조사가 직접 회수하도록 하는 규제도 추진되고 있다.

노담 사피엔스 금연광고. 보건복지부 제공.
노담 사피엔스 금연광고. 보건복지부 제공.

우리 정부도 올들어 ‘노담 사피엔스’를 앞세운 금연광고를 내보냈다. 노담 사피엔스는 담배에 노출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종)의 출현을 의미하는 말이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20대 청년층을 대상으로 좋은 기억력, 우수한 폐활량, 민첩한 반응력 등 담배를 피우지 않아 갖게 되는 ‘노담 능력’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담배 없는 세대’ 양성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것과 대조적으로, 실제 규제 속도는 매우 더딘 편이다. 담배 유해성분 정보 공개가 가능한 법안이 지난 6일에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지 10년만의 결실이다. 담배에는 4천여가지 화학물질과 70종이 넘는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지만, 그동안 타르와 니코틴 등 암을 유발하는 8종만 노출돼 왔다. 담배에 포함된 성분들이 ‘기업 영업비밀’로 여겨진 탓이다.

노담 사피엔스 금연광고. 보건복지부 제공.
노담 사피엔스 금연광고. 보건복지부 제공.

흡연율 감소에 효과가 큰 가격 규제도 지지부진하다. 담배값은 ‘서민 과세’라는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2015년 4500원으로 올린 뒤 여지껏 그대로다. 주요 외식품목 가격(2015→2022년)과 비교해보면, 담배값이 동결되는 동안에 김치찌개 백반은 5727원에서 7077원으로 올랐고 담배와 가격이 같았던 짜장면은 5769원으로 뛰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의 담배값(2021년)을 원화로 바꾸어 순위를 매겨보니, 우리나라는 34위에 그쳤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만5160원으로 가장 비쌌고 뉴질랜드(2만3853원), 아일랜드(1만9042원), 노르웨이(1만6951원) 등의 차례였다.(보건복지부 자료) 금연 선도국들에선 정기적인 담뱃세 인상, 물가와 연동해 담뱃세를 조정하는 물가연동제 등 엄격한 가격 규제가 이루어진다. 역설적이게도 담뱃세를 올리면 저소득층 사망률이 고소득층에 견줘 더 큰 폭으로 떨어진다. 전세계 13억 흡연 인구의 80% 이상이 저소득, 중간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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