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폭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엄청난 불행 뒤에는 엄청난 책임이 있다. 흔히 누구 책임인지 가리는 데 몰두하지만 골고루 나눠 가지고도 남을 책임이 있는 일도 많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적 배경이 그렇다. ‘유대인 문제’는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뿌리가 이렇게 깊은 갈등은 흔치 않다.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적인 공격 직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 명단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국가와 민족들의 커밍아웃이라는 느낌을 풍겼다. 이들은 쌓이고, 얽히고, 뒤틀린 문제를 만들고 키우는 데 기여한 세력이거나 그 후예들이다. 2천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이 얼마나 살뜰하게 비극을 만들고, 지금도 이어지는 참극의 기반을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 대략 살펴보자.
1번 이탈리아. 이 나라가 뿌리로 삼는 로마제국은 1세기에 더는 죽일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해 ‘유대인 디아스포라(이산)’라는 신화의 주요 장을 썼다.
2번 프랑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각지에서 추방당하고 학살당했다. 흑사병 시대에는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 탓에 도처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이 학살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1394년 샤를 6세는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
3번 영국.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후원했다. 특히 1917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민족적 거처”를 마련하는 것에 찬동한다는 ‘밸푸어 선언’이 결정적이었다.
4번 독일. 반유대주의는 나치 홀로코스트로 절정을 이뤘다. 더는 유럽에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갔다.
5번 미국.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가장 먼저 승인했다.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돕는 한편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한 국제적 비판과 저항에 맞서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
서구가 이스라엘의 건국과 존립을 도운 것은 과거에 저지른 막대한 죄악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이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방식이었다. 히틀러가 유대 민족을 절멸시키려는 방식을 택했다면 다른 세력은 이들을 유럽 밖으로 내보내는 ‘인도주의적’ 해법을 택한 셈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전부터 제기됐다. 동아프리카로 보내자는 제안도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유대인들을 연해주로 보내 비로비잔 자치주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결국 팔레스타인 땅을 택했고,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쫓겨났다. 그런 면에서 유럽은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했고, 유대인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유럽 기독교인들 죄악의 대가를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치르는 꼴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처럼 이스라엘인들도 끔찍한 희생을 겪는다.
이 비극에 역사적·도의적 책임을 느끼는 국가와 문명이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주고 그곳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빵을 주겠단다. 이 무슨 해괴한 행태인가.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으라는 말인가.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만 양쪽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다시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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