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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대통령께 자유를

등록 2023-11-03 07:00수정 2023-11-03 07:3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망스럽기도 했다. 시민들은 너무 힘든데 대통령만 즐거워 보여서다. 이젠 아니다. 대통령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집권당 참패로 끝났다. 대통령 부정평가는 60%를 넘어선 뒤 내려올 기미가 없다. 총선이 바짝 다가왔고 경제 상황을 보면 내년이 두려울 정도다. 단언컨대 ‘대통령의 행복한 시간’은 끝났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감히 권한다. 이제 짐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시면 어떨까.

‘자유’가 무려 35차례나 등장한 대통령 취임사를 보며 느꼈다. 이분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걸.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평소 입말을 보건대 어쩌면 시인이 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직업정치가로,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까지 밀어 올린 건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다. 얄궂게도, 자유를 이토록 중히 여기는 사람이 최근 5년간 겪은 운명은 너무나 타율적이었다. 운명의 파도에 휩쓸린 당선자의 내면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응축되었으리라. 그 열망은 취임 첫 일성에서 ‘총 35회 자유 선언’으로 폭발한다.

자유, 특히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가치다. 서른다섯번 아니라 일흔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집권 2년을 채워가는 지금, 대통령께서 그토록 부르짖은 자유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다. 어떤 사회의 자유를 측정·비교하는 대표적 기준은 바로 ‘언론의 자유’다. 그러나 세상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경악할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검찰은 지난 대선 시기 윤석열 당시 후보에 대한 검증 보도를 했던 경향신문 등 몇몇 언론사들을 잇따라 압수수색했다. 대통령제 아래서 대선 후보는 누구보다 강도 높은 검증의 대상이다. 그 전방위적 검증 과정은 선거의 하이라이트이자 언론이 전력투구해야 할 전문 영역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를 집중 취재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언론을 압수수색한다? 글자 그대로 ‘자유의 전면 부정’이다.

언론 탄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른바 보수진영까지 반발하고 있다. 한 우익 성향 언론학자는 대표적 우파 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윤석열 정권의 가짜뉴스 정책을 “반헌법적 언론통제”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잠깐 읽어보자. “언론 일각에는 분명 악의적인 허위보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빌미 삼은 권력의 언론통제 시도는 보다 큰 위험을 내포한다. 지금은 거짓처럼 보이는 보도가 종국에 사실로 드러난다면? 국가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 판정이 특정한 정치권력의 관점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언하는가.”(얼마 후 이 글은 신문사 웹에서 삭제됐다.)

며칠 전 대통령께서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음을 절규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상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참 의아하다.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국제협약까지 위반하며 타국민의 인권을 박탈하려 드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이렇게 설득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 (…)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대통령 취임사)

대통령은 시민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자기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직업이다. 야당은 물론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까지 포용해야 한다. 안타까운 건 용산의 자유로운 영혼에게 그 일이 너무 버거워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대체 뭘 하고 싶은지 아무도, 심지어 본인조차 모른다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다. 벌써 레임덕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때에 따라 대통령제를 내각제처럼 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발상으로 보면 대통령과 시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택지가 딱 하나 떠오른다. 2017년 촛불 시위로 알게 된 사실은 대한민국 시스템이 대통령의 국정 공백에도 끄떡없이 버틴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준비돼 있다.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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