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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 어퍼컷을 맞은 건 ‘민생’입니다 [아침햇발]

등록 2023-11-05 14:34수정 2023-11-06 13:31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의 승인을 요청하는 시정연설을 했다. 연설문 초안에 있던 문재인 정부 관련 비판 문구를 직접 삭제했다는 뒷이야기와 함께, 야당에 ‘감사’와 ‘부탁’을 할 정도로 태도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을 했다고 전 정권을 비판했는데, 이번엔 그런 표현이 없어졌다.

나는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2022년 3월11일), ‘윤 대통령, 이제라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2023년 8월11일)는 제목의 ‘아침햇발’ 칼럼으로 대통령이 전 정권과 싸움을 그만두고, 민생 현안과 시대적 과제에 마주할 것을 고언한 적이 있다. 비로소 윤 대통령이 말에서 내린 것일까? 최근 움직임을 보면 대통령은 전 정권을 공격하는 게 더는 득 될 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말에서 아주 내린 것 같지도 않다. 다른 ‘나쁜 놈들’을 찾아 싸움을 계속할 태세다.

시정연설 다음날 윤 대통령은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다. 회의 머리발언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또 서민들이 죽는다.”

내년 예산안을 초긴축으로 짠 일을 해명하기 위한 발언이었는데, 대통령이 경제에 그토록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뻔한 거짓말을 한 것인지 나는 지금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코로나 대유행이 일어나기 전인 2015∼2019년 5년간, 우리나라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율은 평균 26.4%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속보치)을 보면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할 때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가 0.1%포인트에 그쳤다. 기여율로 치면 7%다. 세수 펑크 때문에 정부가 하반기 들어 지출을 줄이고 있고, 그것이 물가를 올리기는커녕 성장률을 갉아먹는 상황임을 모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떻게 ‘국민의 물가고를 덜어주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변하는가.

내년 예산안의 정부 지출은 올해보다 2.8% 늘리는 것으로 짰다.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 4.9%보다 훨씬 낮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고? 거짓말이다. 세수가 너무 적어, 그보다 지출을 늘리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를 넘기 때문에 그러고 있는 것 아닌가. 경기가 좋지 않은 때 그렇게 긴축정책을 펴면,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많은 국민이 물가고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경기침체와 세수 기반 약화의 악순환도 우려스럽다.

국제 에너지 가격, 곡물·식품 가격 상승이 유발하는 국내 물가 상승은 아무리 뛰어난 정부라도 쉽게 해결 못한다. 고금리도 세계를 휩쓰는 고물가의 영향이 크다. 정책의 효율적 조합을 통해 성장과 물가 안정을 균형 있게 추구하고, 취약계층을 돌보고, 가계부채 문제가 커지거나 폭발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획기적인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게 긴요하다. 일찌감치 금리 인상을 중단해 통화정책은 발이 묶여 있는 만큼, 예산을 통해 최적의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이란 이름의 덫에 걸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스스로 친 덫이다. 지지세력에 대한 대규모 감세 탓에 덫이 발목을 더 세게 죄고 있다. 속박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서민들이 죽는다”는 이상한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게 두는 경제 참모들을 그대로 두고, 대통령이 사태를 잘 수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택시 기사들을 등치는 카카오모빌리티’나 ‘갑질 하는 은행’을 비난하며, 검사 시절의 특기를 계속 살려가려 한다. 국민의힘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공매도 전면 금지’ 등을 거론하며 사탕발림의 길로 전진을 시작했다. ‘싸구려’도 이런 싸구려가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운영이 이렇게 좀스러워진 적이 있던가.

윤 대통령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서 소상공인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자 대선 때 쓰던 ‘어퍼컷’ 포즈를 두차례 취하며 화답했다. 그 어퍼컷을 맞고 누가 쓰러져 있는지, 부디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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