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 코인데스크코리아 부편집장
“국내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발행을 확신했다. 국내에서는 관련법도 없는 단계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관련 논의가 시작되리란 확신이었다.
지난 9일 부산에서 열린 한 블록체인 행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산의 지역화폐인 동백전을 스테이블 코인 형태로 블록체인에서 발행하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대담에 나선 연사들은 블록체인이 낡은 금융시스템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시민에게 혜택을 돌려줄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스테이블 코인은 특정 통화나 상품의 가격을 추종하는 암호화폐(가상자산)를 의미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에 맞춰져 있다. 1개 토큰이 1달러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세계 1위 회사인 테더가 발행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 유에스디티(USDT) 시가총액은 895억달러(약 116조원)에 이른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어 세번째로 큰 규모다.
유에스디티 1토큰은 어떻게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할까. 테더는 유에스디티를 발행하면서 받은 달러를 활용해 미국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한다. 그리고 발행한 토큰보다 큰 규모의 준비금을 보유한다. 테더는 지난 2분기 스테이블 코인 발행 준비금을 33억달러(약 4조3천억원) 초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더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1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비슷한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스테이블 코인 시장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페이팔은 지난 7월 미국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 피와이유에스디(PYUSD)를 출시했다. 202개 국가에서 4억3천만명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페이팔은 글로벌 간편결제 시장에서 애플페이, 알리페이 등에 이은 4위 사업자다.
동남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앱인 그랩도 지난 9월 서클과의 협업을 발표했다. 서클은 세계 2위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다. 골드만삭스의 자회사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 유에스디시(USDC)를 발행한다. 차량공유 및 배송, 전자상거래,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며 1억8천만명 이용자를 보유한 그랩도 스테이블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대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자금결제법 개정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정의해, 시중은행이나 일정 요건을 갖춘 신탁회사가 법정통화에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금융그룹은 자회사인 프로그마(Progmat)를 통해 엔화를 포함한 다수 법정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214개 일본 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일본 시장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테이블 코인이 먼저 활용될 것으로 예상하는 일본 내 기업 간 결제 시장은 1천조엔(87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면 결제와 청산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상품 구매자의 지갑에서 판매자의 지갑으로 토큰이 바로 전송되기 때문이다. 레이어2 등의 기술이 활용되면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수수료도 절감된다. 판매자에게 정산 금액이 지급되기까지 수일이 걸리는 현재의 신용카드 시스템과 대비된다.
모바일 결제 도입과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글로벌 결제기업들이 블록체인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