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참여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부가 환경을 파괴하는 1회용품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안녕하십니까. ‘말단 빨대’ 인사 올립니다. 지난 7일 일회용품 규제 철회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선생님께서는 저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라는 건 (중략) 아주 말단의 소비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고요. 이어 ‘플라스틱 대책이 꼭 일회용 빨대에 집중될 필요는 없다, 일회용 빨대는 우리 플라스틱 전 주기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도 하셨죠.
그 말씀을 네 글자로 요약하면 ‘빨대 따위’ 내지는 ‘말단 빨대’ 정도 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대유법을 기억하십니까. 빵(=식량)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처럼 일부로 전체를 대신하는 것 말입니다. 저는 비록 하찮은 빨대일지언정 제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 말씀드리고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잘 아시듯 플라스틱이 태어난 건 100년 남짓입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사람들은 플라스틱이란 물질을 상상조차 못 했을 테죠. 지금은 플라스틱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하게 됐지만요.
플라스틱이 이렇게 빠르게 세상을 파고든 건 저를 써야 할 명분이 너무나 그럴듯해서죠. 예컨대 포장재 앞에는 으레 ‘불필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죠. 그러나 오이를 랩 포장해 유통하면 진열 기한이 며칠 더 늘어납니다. 포도를 플라스틱 통에 넣어 팔면 매장 내 폐기율이 20% 줄고요. 비닐이 있으면 나눠 팔기도 편하니 제조사 입장에선 매출을 극대화하는 판매 단위를 결정할 수도 있죠.
위생과 편리함에 더해 저렴하기도 합니다. 싸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플라스틱을 쓰는데, 버리는데도 주저함이 없어요. 재사용이나 업사이클링으로 사용량을 줄여보려고 애쓰지만 재생원료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비율은 10% 될까 말까입니다. 빨대에 빙의해 이 글을 쓰는 윤지로도 가치소비한답시고 군용텐트나 카시트로 만든 가방을 메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만 그가 버리는 플라스틱 총량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20년 동안 2배 늘었고, 30년 뒤에는 지금보다 3배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대체 플라스틱은 전 과정 평가(LCA)에서 외려 탄소배출량이 더 많거나 인체에 해로운 거로 밝혀져 배신감을 주기도 하고요.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저, 빨대는 말입니다. 이런 플라스틱 서사가 빠짐없이 담겨 있어요. 제 덕에 냉장·얼음 음료는 날개 돋친 듯 팔릴 수 있었죠. 제가 없어도 음료를 마실 순 있지만 이따금 얼음으로 찝찝한 세수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겠죠.
빨대 하나 정도는 ‘서비스’가 될 만큼 쌉니다. 그래서 휙 버려지고, 설령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돼도 너무 가벼워 폐기물 선별장에서 분리되지 않아 사실상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대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럽에선 종이 빨대가 ‘영원한 화학물질’이라고 하는 과불화합물(PFAS) 검출 논란에 휩싸였고, 흐물거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텐 빨대와 대나무 빨대는 플라스틱보다 탄소 배출량이 각각 148배, 27배 많아 이걸 만회하려면 수십, 수백번 쓰겠다는 다짐이 필요하죠.
어쩌면 선생님 눈에 저는 어느 날 우연히 코스타리카 바다거북 콧구멍에 꽂힌 바람에 실력에 비해 너무 떠버린 벼락스타 같겠지만 저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고작 0.022%(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중)를 치우잔 얘기가 아닙니다. 안전하고, 편리하며, 저렴한 대체재라는 난망한 해법을 찾는 과정이면서 폐기물 수거·재활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말단 빨대가 아니라 훌륭한 시험대란 말입니다.
공교롭게 최초의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내년 한국에서 열린다죠. 일회용품 규제 완화가 차라리 총선용이었기를, 그래서 내년 회의에서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