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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공병원 없이 새 감염병 과학방역 가능할까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3-12-08 09:00수정 2023-12-08 09:15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지도부 및 공공병원 대표자들이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와 공공병원 대표자 등 28명은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들의 운영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며 돌입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지도부 및 공공병원 대표자들이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와 공공병원 대표자 등 28명은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들의 운영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며 돌입했다. 연합뉴스

임재희│인구복지팀 기자

지난달 카드값을 정리하다가 직전 달보다 두배 늘어난 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카드회사 애플리케이션에서 이용 내용을 고액 순으로 나열해 보니 ‘○○병원’이란 이름이 떴다. 가족이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은 주말이 있었는데, 그때 찾아간 응급실 병원 이름이었다. 정신없이 병원에 달려가 진료비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모른 채 카드를 긁었던 기억이 그제야 떠올랐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과 나눈 대화는 진료비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응급실 가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이야기했다. 지난해 10월 의료진 판단에 따라 필요한 때에만 검사하도록 지침이 바뀌기 전까지,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조차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유행 초기만 해도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병원 문턱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면서 바이러스로도 얼마든지 병원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 유행 초기 이 문턱을 낮추는 게 정부의 우선 해결 과제 중 하나였다. 보건복지부는 35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부터 일반 병상을 비우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문턱을 낮췄다. 2020년 상반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67곳 중 55곳이 공공병원이었다.

그렇게 문턱을 낮추느라 동원됐던 지방의료원들이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대부분 공공병원이 지난해 5월을 전후해 전담병원에서 지정 해제됐지만, 병원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는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병상 이용률이 9월 말 기준 49.5%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80.9%보다 3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고 밝혔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일반 진료를 보지 않게 되자 기존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떠났기 때문이라는 게 지방의료원 구성원들의 생각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함께 상반기 경영실적을 토대로 추산한 35개 지방의료원의 올해 적자 규모는 2938억원에 이른다.

“이제는 임금 체불까지 걱정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감염병 전담병원을 안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법정 감염병 등급이 2급에서 4급으로 내려가는 등 팬데믹을 지나며 희미해져가던 이달 4일, 김정은 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서남병원 지부장은 국회 앞에서 무기한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올해 6935억원 대비 98% 삭감한 126억원만 편성된 내년도 의료기관 손실보상 예산안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년간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896억원 증액을 의결했지만 실제 증액될지는 불투명하다.

정부 예산 투입이 공공병원 적자 문제를 해결할 완전한 해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 때 역할을 톡톡히 한 공공병원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건 문제다. 의료진의 이탈을 막고 최소한의 필수진료 기능이라도 유지하려면 적어도 임금 체불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해 병원 문턱이 높아졌을 때, 공공병원 없이 과학방역이 가능할까. 공공병원 사용 명세서 정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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