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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저 옥천으로 가요”…괜찮은 귀촌 일자리까지, 운이 좋았다

등록 2023-12-18 09:00수정 2023-12-18 10:25

충북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 손모내기 축제에 나온 어르신들. 필자 제공
충북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 손모내기 축제에 나온 어르신들. 필자 제공

[6411의 목소리] 이다현 | 옥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팀장

“저 옥천으로 이주해요.”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6년 전 서울에 직장을 잡을 때부터 지역살이를 생각했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았으니 한적한 곳에서도 살아보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다 지역에서 이런저런 활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설렜다. 그래, 지역소멸시대라는데 나 하나라도 지역으로 가자. 그렇게 나의 지역 이주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다.

전국 모든 지역을 후보지로 놓고 물색을 시작했다. 기준은 내가 참여할 만한 청년정책이 있는지와 교통, 접근성, 환경 등이었다.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충북 옥천을 최종 점찍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오래 살았던 대전과 가까워 안정감이 있었다. 게다가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한 곳이라니 나 같은 초짜 외지인도 슬쩍 끼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였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일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채용공고를 뒤지다 곧 좌절했다. 내가 해왔던 일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기술, 운전, 제조업 쪽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여성들도 굴삭기나 지게차 자격증 딴다는데 지금이라도 도전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기술 배워야 먹고산다던 어른들 말씀이 갑자기 사무쳤다.

약 석달을 그렇게 지내고 현재 나의 직장을 발견했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라고, 행정이 지원하는 공동체 사업에 주민이 참여하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이었다. 마을공동체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이고, 주민 활동을 지원하면서 지역을 두루 살피는 데도 도움 될 것 같았다. 그동안의 자괴감을 얼른 추스르고 진심을 담아 이력서를 썼다. 면접 뒤 약 2주 만에 나는 드디어 옥천군민이 되었다.

이곳 중간지원조직 업무는 도시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중간’은 행정과 민간의 사이라는 의미다. 옥천군 마을공동체 사업에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돕고, 주민 활동을 지원한다. 이 ‘지원’에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포함되어 있다. 공동체 활동을 계획하고, 관련한 서류 준비를 돕는다. 행사가 있으면 홍보물도 만들어 참여자를 모으고 손뼉 치며 흥을 돋운다. 갑자기 행사 진행자(MC)가 되기도 한다. 모든 어르신을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며 우리 사업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시도록 응원해드리는 것도 역할 중 하나다.

문제는 컴퓨터다. 대부분 70~80대 이장님들이 마을 사업을 이끄는데, 관련한 컴퓨터 작업이 내가 봐도 보통 일이 아니다. 첨부해야 할 서류는 어찌나 많은지, 서류 때문에 일 못 하겠다는 협박(?)도 이따금 터져 나온다. 커피 타드리며 불만도 들어주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설득한다. 정 안 되면 노트북 들고 옆에 앉아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다. 영수증을 붙이고 정리하는 게 우리 같은 중간지원조직의 연말 풍경 중 하나이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어르신들은 종종 나를 공무원으로 아신다. 중간지원조직 직원이라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도 고개를 갸웃하신다. 이제는 나름 방법을 써서 ‘준공무원’이라 소개한다. 그러면 젊은 처자가 좋은 직장 다닌다고 대견스러워하신다.

진짜 공무원은 아니지만 어르신 말씀대로 좋은 일자리라 생각한다. 대체로 업무시간이 정해져 있고, 육체적인 노동강도도 세지 않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월급은 웬만한 도시 수준인데, 생활비는 그만큼 들지 않는다. 현재 사는 볕 좋은 18평형 아파트 월세가 45만원인데, 군에서 청년 월세지원금으로 월 10만원을 지원해준다. 확실히 서울에서 살 때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느낀다. 지역살이에서 가장 기대한 바이기도 하다.

나는 운 좋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잡아 고민하던 지역이주를 실현할 수 있었다. 여기 직원 가운데 나처럼 일을 계기로 옥천에 온 분이 5명, 도시로 나갔다가 유턴한 청년이 2명이다. 지역소멸 위기에서 일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는 매우 한정적이다. 갑자기 조직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결국, 처음 마주했던 일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생계를 위한 일뿐 아니라 재밌게 살기 위한 활동도 계획 중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일과 활동의 중간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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