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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건희 리스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등록 2023-12-31 12:40

[아침햇발]
2022년 7월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자료 검토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김건희 여사가 내려다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강희철 | 논설위원

 제국의 황후는 남편 못지않은 권력자였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서기 832년, 콘스탄티노플(지금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궁정 너머 보스포루스해협을 바라보던 동로마 황제 테오필로스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상선 한척을 발견했다. “저 배의 주인이 누구인가.” 신하가 머뭇거리다 “황후마마”라고 답했다. 그 즉시 황제는 나직한 소리로 단호하게 명했다. “배와 물건 모두를 불태워 없애도록 하라.” 그러곤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신은 나를 황제로 만드셨는데, 황후는 내가 고작 선장이 되기를 바라는군.”

당시 로마법은 귀족의 상거래를 엄금했다. 평민과 상인이 먹고살아야 제국이 유지된다는 걸 알았다. 한데 황후가 그 법을 어기자, ‘특전은 인정되지 않는다’(Privilegia ne irroganto)는 조항이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사서는 전한다.

천년도 더 지나 대한민국에선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내를 겨냥한 특검법을 막아 세울 거라고 공언했다. 국민 열명 중 일곱이 사실상 지지(한국갤럽)하고 있다는데, 그 역시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다. ‘부인 문제를 털고 가라’고 고언한 사람은 단칼에 절연해버린 기왕의 태도 그대로다. 1300여일째 사건을 들고 앉아 있는 검찰은 기소도 불기소도 못 하고 있다. “무혐의를 쓸 수 있다면 진작 쓰지 않았겠나.” 그럴 수 없는 ‘뭔가’가 있으니 불기소장을 쓰지 못하는 거라고, 대통령의 특수부 시절 동료는 말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특검법과 맞닥뜨렸다.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손해가 막심하다. 정치는 명분을 빼앗기는 순간 잃는 것이 많다.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무력화할 ‘묘수’가 없지 않았다. 김 여사에 대한 ‘기소’ 카드다. 한동훈이 마침 권한을 쥔 자리에 있었다. 장관 사직 전 검찰총장에게 기소를 지시했다면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에서 득점타가 됐을지 모른다. 대통령과 각별한 검찰 선배 한 사람이 “굿 아이디어”라고 했다. “김 여사가 떳떳하다고 하니,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면 더 확실하지 않겠나.” 정치적 실익도 크다. 공정한 처리란 명분에 리스크 해소가 따라붙는다. 거부권 고민을 덜고, 시간도 벌 수 있다. 2월 법원 인사를 고려하면 본격적인 재판은 총선 이후에나 열릴 것이었다. 상황 반전의 해법이 될 만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시도한 흔적조차 없다. “법 앞에 예외 없다”던 한동훈은 불과 며칠 만에 여사가 ‘예외’임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노태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김종필’도 구경하지 못했다.

지난 3월31일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가 관람차에 올라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거부권 행사로 끝이 아니다. 리스크는 그대로다. 주가조작 가담 의혹에 명품 백 수수가 보태졌다. ‘김영란법’ 위반은 약과다. 더 큰 위험이 명품 백 안에 도사리고 있다.

김 여사는 백을 받기 전 최재영 목사의 청탁을 받았다. 대통령 취임 기념 만찬 초대 건이다. 청탁은 실현됐다. 참석자 선정은 “관련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이고, 김 여사가 부탁했다면 “알선”에 해당한다. 그러고 나서 명품 화장품 세트와 디오르 백 등 수백만원어치 “금품”을 순차로 받았다. 백을 받는 자리에서, 다시 최 목사의 관심사인 남북문제와 관련해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을 하시고”라고 제안했다. 남북문제도 “관련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이다. 자칫하면 알선수재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가 될 수 있다. 특별수사의 달인인 대통령과 한동훈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 지금이라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라고 성화를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인수위 초기 당선자 지시를 받은 파견 검사가 ‘특감 임명안’을 만드느라 의견 수렴을 한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얘기가 쏙 들어갔다. 왜겠나. “집권 초라면 모를까, 임기 1년 반이 지났다. 이제는 제2, 제3의 명품 백이 터질까 봐 무서워서 임명 못 할 것이다.”(초대 특감실 관계자) 레임덕에 빠져 우병우, 조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총선 승리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대통령 내외가 자초한 위기다.

해협 한가운데서 황후의 배를 불태워 ‘법 앞의 평등’을 시전할 당시, 황제는 겨우 스무살 청년에 불과했다. 사서는 “정의로운 황제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여덟살, 제위 2년차에 결혼해 서른에 요절하기까지 부부의 금실은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애정과 법치를 맞바꿀 만큼 미욱하지 않았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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