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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전관예우의 심리적 이유

등록 2011-01-12 21:02수정 2011-05-20 10:29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개그콘서트에 ‘전관예우’란 코너를 만들면 대박이 확실하다. 비현실적인 상황 설정, 마비에 가까운 현실감각, 얼토당토않은 근엄함 등 본격 코미디가 갖춰야 할 그 이상을 완비한 소재다. 게다가 궁극에는 은밀하고 야비하게 제 밥그릇 챙기는 전관들, 혹은 인간들의 야수적 본능을 겨냥할 테니 대박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와 관련한 부적격 논란과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새삼 확신하게 되는 상상이다.

조금씩 시각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정동기 부적격 논란’의 핵심은 전관예우의 부조리함이다. 줄거리는 똑같은데 매번 주인공만 교체되는 저급한 먹이사슬 드라마를 수십년째 반복 시청하는 느낌이다.

정동기씨는 대검 차장에서 법률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 동안 7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청와대는 세금 떼면 4억원 정도로 법적 문제가 없다고 엄호했다. 이런 계산법이라니. 월급에서 세금은 누구나 뗀다. 거기에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경쾌한 어조로 마침표를 찍는다. 단지 봉급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는 어렵고 실질적으로 그만큼 일을 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의 참담함에 대해 얘기하는데 전혀 톤을 맞추지 못하고 우리집도 가난하다며, 요리사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다 하는 영어 참고서의 그 전설적인 예문을 들이미는 격이다. 월 1억을 받아서 합당한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뒤로 밀쳐놓더라도, 전관예우의 세계에 익숙한 이들은 작금의 정동기 논란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전관예우는 퇴임 이후 공직을 사익에 이용하는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악습이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외국 출장 때 누적된 마일리지를 개인이 사용하는 걸 문제삼을 정도로 공적인 영역의 영향력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걸 단속한다. 공직에서야 더 말할 게 없다.

전관예우는 인간의 위계질서 인식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악습의 뿌리가 깊고 질기다. 군에서 제대한 뒤 사회에서 고참을 만나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고참임에도 처음에는 반말하기가 어렵다. 자세도 경직된다. 2년 정도 상명하복에 길들여졌을 뿐인데도 그렇다. 고위공직 출신의 전관들은 자신의 재직 당시 업무와 관련해 후배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된다. 그런 압력에서 자유로운 후배가 되기는 쉽지 않다. 심리적으로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나중에 자신도 그들과 같은 전관의 처지가 될 텐데 모르는 척할 수 없다. 악순환의 공생구조다.

전관들의 상당수는 실무능력보다 자릿값, 얼굴값이 먼저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97년 한 해 연간 200건 이상의 형사사건을 맡은 전국 변호사 21명 중 20명이 개업한 지 1∼3년 안팎의 판검사 출신 변호사였다. 그런 이들과 맞상대하려면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용가리형처럼 더 ‘쎈’ 전관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좀 과장하면 전관예우 공화국이다.

원로 축구인 김호 감독은 고향에 내려가 아이들에게 ‘공정하게 공을 차면 이긴다’고 가르치고 있다. 공정하게 공을 차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을 차는 아이들은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기본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예측가능하므로 인간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한다. 그에 반해 전관예우는 특정한 소수집단만 폭력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전형적인 불공정 구조다.


전관예우를 개인적인 도덕성이나 의지만으로 단절하긴 어렵다. 정동기씨도 개인적으론 검소하고 청렴한 공직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청문회조차 해보지 못하고 사퇴하는 자신의 심정을 재판 없이 사형선고를 당하는 심정으로 묘사했다. 불공정한 관행은 양쪽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몇 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전관예우 금지 관련 법안 등은 하루빨리 처리되어야 마땅하다. 전관예우라는 단어가 고려장이라는 사어처럼 취급되는 사회, 그게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사회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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