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최근 이집트, 리비아 사태 등에서 그곳에 있는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대한민국 외교통상부가 취한 일련의 대응조처들을 목격하는 일은 더없이 착잡하다.
옆집 살던 다른 나라의 이웃들은 이미 자기 정부의 주선으로 빠져나간 지 오래인데 시위 현장 근처의 빈집에서, 피난길의 국경에서, 북새통을 이룬 공항에서 생명의 위기감을 호소하고 안전대책을 갈구하는 우리 국민들의 다급한 육성들은 햇빛 앞에 노출된 안개처럼 반향 없이 스러져 버렸다. 전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외교적 대응은 늘 그래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가깝게는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된 한지수씨 사건을 비롯해 허다하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외교부의 그 초지일관하고 무정한 대응 방법에 억장이 무너질 정도다.
그런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대한민국 외교부가 쏟아내는 멘트는 늘 똑같다. 선진국에 비해 예산도 적고 손도 달린다는 것이다. 밤새워 노력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교인력이 적으니 너희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식이다. 재난 현장에 투입된 119 구조대원들이 밤샘 근무의 피곤함을 이유로 구조를 미루면 어찌해야 하는가. 긴급한 비행 사고 현장에서 승무원들이 자신의 봉급체계나 개인 컨디션을 이유로 승객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외교통상부의 일년 예산 1조5000억원 중 재외국민 보호 관련 예산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산 규모가 작다고 관심이나 중요성조차 미미해도 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해외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국민들의 다급함은 늘 생사를 다툴 만큼 결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외무고시는 고시계의 꽃으로 불릴 만큼 최정예 엘리트를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선발·육성된 외교관들 스스로 제일 중요하게 꼽는 능력은 조국애와 인류애다. 하지만 순혈주의로 상징되는 자폐적 내부소통이 관성으로 굳어진 탓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처럼 외교관들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에 대한 개념이 거의 상실된 것처럼 국민의 눈에는 비친다. 과자를 만드는 회사 직원이 고객보다 자기네 회장님 입맛에만 맞추는 식의 내부소통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그 회사는 망한다.
온두라스의 악몽을 경험한 한지수씨의 증언은 생생하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무엇을 도와줄까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이었단다. 곤경에 빠진 국민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마음보다 특정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사실관계 규명에 더 매달린다는 얘기다.
외교통상부 누리집(홈페이지)에는 ‘언론해명자료’라는 코너가 있다. 언론에 보도된 외교부 관련 업무에 대해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알려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자료다. 외교부가 일은 잘하는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억울한 오해를 많이 받으니 그것을 해명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아수라장 같은 리비아 현장에서 버림받은 자식들처럼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하지 못한 채 ‘자력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졌던 이들의 심정은 해명자료로 상쇄되지 않는다. 카이로 공항에서 자국민을 위해 국기를 달고 보호구역을 만드는 다른 나라 외교관을 보며 자괴감과 허탈감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조금도 와닿지 않는 접근방법이다.
한지수씨 사건에서 수많은 누리꾼들이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안전을 위해 소식을 퍼나르고 대책을 촉구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든 나도 겪을 수 있는 위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욕구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교관의 남다른 조국애와 인류애에 대한 자부심을 거론하는 일은, 사치이거나 사기이다. 최소한도의 직업의식이 있는 외교관이라면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한지수씨 사건에서 수많은 누리꾼들이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안전을 위해 소식을 퍼나르고 대책을 촉구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든 나도 겪을 수 있는 위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욕구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교관의 남다른 조국애와 인류애에 대한 자부심을 거론하는 일은, 사치이거나 사기이다. 최소한도의 직업의식이 있는 외교관이라면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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