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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나는 사람이다

등록 2011-04-13 20:04수정 2011-05-20 10:31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근자에 직업적 이유를 떠나, 사람에 대한 감수성에 더없이 갈급하다. 자기 식대로 사람답게 살자고 다른 이에게 사람답지 못한 삶을 강제하는 비인간적이고 모순된 행태가 즐비해서다.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맷값을 던져준 재벌가 2세가 감옥에서 풀려났다. 피해자와 합의한 점이 중요한 감형 이유라지만 여론은 분노와 냉소가 주류다. 대한민국 일부 자본권력자는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일상적이다. 재벌 회장이 자기 아들 건드린 이들을 거침없는 폭력으로 다스릴 때처럼 외부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없다. 그러니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자식이 맞고 들어왔는데 가만있을 부모가 어디 있나? 회사 앞에서 1인시위로 약 올리는데 참을 수 있는 경영자가 어디 있나? 그런 논리로 폭력을 휘두르고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현실이 그러했으므로 돈 많은 이들에겐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학습효과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사람 개념의 부재 현상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어김없다. 꽃봉오리 영재들이 3개월 사이 4명이나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현재 이 불행한 사태의 핵심 쟁점은 카이스트 총장의 사퇴 여부, 외부 인사의 개입 논란, 학사운영 개선안 등이다. 그 안에 있는 꽃봉오리 같은 영혼들의 생명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다. 이른바 서남표식 교육개혁의 핵심은 아무리 잘해도 4분의 1은 탈락시키는 무한경쟁이다. 다 같이 잘되는 건 교육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전략이라는 거다. 일부가 희생해야 경쟁력이 급상승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은 거의 신앙의 수준이다. 카이스트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아 자퇴하고 싶지만 울면서 말리는 부모님을 보며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학생들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니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도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젊은 시절 성폭행도 당해보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불구도 돼봐야 사람 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젊은 목숨을 희생해도 될 만큼 대단한 누군가의 소신이나 개혁이란 단언컨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희생을 치러야만 이룰 수 있는 소신과 개혁이라면 개나 줘야 마땅하다.

디엔에이(DNA)법이라는 게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아동 성폭력, 살인, 성폭행, 마약 등 상습적 흉악범죄에 대한 효율적 수사 등을 위해 해당 범죄자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가뜩이나 반인권적 요소가 많은 법인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도 검찰은 파업 중의 물리적 충돌로 유죄 판결을 받은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에게 디엔에이를 채취하겠다고 통보했다. 파업 노동자와 철거민들을 상습적 흉악범죄자와 동일하게 보고 국가가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 사회 모순 해결과 최소한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저항한 이들을 평생 국가의 감시를 받아야 할 흉악범죄자로 인식하는 대한민국 국가공권력의 디엔에이를 해부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사람에 대한 감수성의 정도가 대저 이러하다. 그런 현실에서 ‘나는 사람이다’란 자기중심성이 사라질 경우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에 감동하고 열광했던 이유는, 가수라는 게 본래 노래 잘하고 무엇보다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 존재인데 그 본질에 충실해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사람이다’라고 되뇔 때 그 안에는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다’라는 명제에 방해가 되는 모든 삿된 것들은 경계와 저항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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