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결국 만났다. 지난 주말 영도조선소에서의 일이다.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들과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1000여명의 사람들이 만났다. 회사 쪽의 원천봉쇄로 팔순이 넘은 사회 원로와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는 광경은 눈물겹다. 그렇게 해봐야 그들은 김진숙과 손을 잡아보지도, 부둥켜안을 수도, 마주앉아 얘기 나눌 수도 없었다. 크레인 위에 있는 그녀와 서로 손 흔들고 손나발로 이름 한번 외치며 안부를 확인하자고 그 먼 길을 달려오고 그 높은 담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침묵했고 일부 언론은 ‘외부 노동세력이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용역을 폭행하고 국가보안 목표시설인 영도조선소에 무단 침입하는데도 경찰이 수수방관했다’고 보도했다. 사실관계를 다루는 기사에 이 정도의 분노와 훈계질이 담기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건 욕정에 눈먼 원조교제남의 사랑타령처럼 이미 사실이 아니다.
사쪽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용역 수백명을 동원해 조선소 안에 있던 아버지뻘 노동자들을 방패로 내리찍고 내던지고 소화기를 뿌리며 토끼몰이 하듯 내몰았고, 경찰은 뒤에서 팔짱 끼고 담소하며 수수방관했다. 크레인 위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제발 우리 조합원을 때리지 말라”고 절규하던 김진숙이 그 순간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고백은 철렁하지만, 당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과 해도 변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아득함은 사람을 무릎 꺾이게 한다. 그런 무기력함과 아득함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홀로’라는 생각이 들면 천하장사라도 견디지 못한다. 꼬꾸라진다. 한진 파업노동자 가족의 눈물 고백은 가슴이 저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끼리 투쟁하다 우리끼리 말라죽는 거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매일 사원아파트에 모여서 울었습니다.” 희망버스는 그렇게 울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들은 홀로가 아니라고 손 내미는 행사였다.
하지만 자본권력은 검투사들에게 죽음의 결투를 시켜 자기 가문의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검투사 양성소 주인들처럼 뒤로 쏙 빠져 과실만 챙긴다. 검투사들끼리 죽자사자 싸우는 형국이다. 그들이 설정한 그 기막힌 게임의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불순한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부산 여행 중이던 21살 딸아이는 주말 내내 영도조선소에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진숙 이모를 보기 위해 그곳에 도착해 밤새 트위터로 현장을 생중계했다. 어젯밤 클럽에서 봤던 또래의 청년이 용역으로 현장에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여기 온 사람들도 자기네들처럼 일당 받고 온 거 아니냐고 되묻는 소년 용역의 행동에 혀를 차기도 했다. 딸아이가 그 밤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사람’과 ‘함께’였다.
조합원을 때리지 말라는 김진숙의 참담한 절규를 접한 이들은 ‘한진중공업’을 검색어 1위에 올렸다. ‘낑낑대며 클릭해서 검색어 1위나 만드는 일이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현실을 바꿔 보려고 클릭했고 그래서 잠시나마 바꿨다’고 말한다. 그런 순간 ‘함께하면 더 바꿀 수 있고 다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가슴에 꽂힌다.
한진 노동자 가족들은 그곳에 왔다 돌아가는 이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입이 있고 손이 있고 머리가 있어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에 함께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사람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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