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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막말 언론

등록 2011-07-04 18:49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비속어는 외형상 막말일 뿐이지만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은
더 치졸한 막말의 극명한 사례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방식이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단순함에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간단한가. 그러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규정하게 되고 왜곡과 편견이 뒤따른다. 하지만 어쭙잖은 틀이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는 막말을 화염방사기처럼 쏟아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사 진행자 및 고정출연자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할 경우 출연을 금지하도록 하는 <문화방송>의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이 바로 그런 막말에 해당한다. 생각도 없고 예의도 없는 막말의 기본기가 튼실하다. 계속 회사를 다니거나 고정출연하려면 방송에서는 물론 방송 이외의 장소에서도 사회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방송에 고정출연하려면 생각 자체를 표백해야 할 판이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표적 집단인 언론사가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공기가 무진장으로 많은 곳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숨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언론 종사자들은 제3자 효과 이론의 맹신자들이다. 나는 괜찮은데 시청자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투다. 자신은 왜곡된 보도를 직접 하거나 보아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분별력과 이유가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 보도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몽질과 훈계질을 동반하는 막말 방송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근자에 많은 국민들은 ‘왜곡 언론인 출연 금지법’을 만들고 싶을 만큼 공중파의 노동 관련 보도 태도에 분노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언론권력자들에겐 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판단이나 개별성은 안중에 없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씨를 응원하러 갔다가 경찰에 연행됐던 대표적 소셜테이너 김여진씨는 경찰이 스마트폰부터 압수하려 했다고 말한다. 35m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씨에게 전달하는 식사는 회사 쪽에서 매번 금속탐지기로 검사하고 일일이 촬영한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녀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교감하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할까봐 걱정돼 국가 공권력과 자본권력이 벌이는 싸구려 코미디다. 권력자들은 누군가의 고통과 억울함에 공감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크레인 밑에서 그녀들의 지시를 기다리는 하수인쯤으로 생각한다. 그런 지시만 없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는 눈치다. 착각이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지 못한다고, 방송에서 말간 얼굴만 보인다고 사람들의 생각과 공감이 사라지는가.

어느 독재자는 ‘악도 힘이 있으면 질서가 된다’는 발칙한 주장을 했다.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법이나 5공 때의 학원안정법 등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막말 법’이다. 법이라는 그럴듯한 틀이 있어 그렇지, 내용적으론 더 갈 데 없이 막말이다.

광주학살의 책임소재를 명징하게 밝혀내려는 관련 단체의 토론 현장에선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상소리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걸 보고 전두환씨가 근엄한 표정으로 고운 말을 주문하거나 느긋한 태도를 강조하면, 그런 게 바로 막말이다. 하지만 그런 막말이 전직 대통령의 성명이라는 외피를 쓰면 현장에서 격론을 벌인 이들만 막말 집단으로 매도된다.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언론사 사규 개정안이라는 외피가 있다고 막말스러운 내용이 달라지진 않는다. 비속어를 쓰고 외모를 비하하는 등의 발언은 외형상 막말일 뿐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은 내용적으로 더 치졸하고 공포스러운 막말의 극명한 사례다. 명실공히 언론사인 <문화방송>에서 고려해볼 만한 규정이 아니다.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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