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아무리 자본독재 시대라지만
온 나라를 상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온 나라를 상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한여름, 고공 크레인 위에서의 농성은 지옥에서의 생활과 같단다. 프라이팬처럼 달궈진 쇳덩이가 주거 공간이란 걸 생각하면 과장된 비유가 아니다. 김진숙씨는 그런 크레인 위에서 202일째 시위중이다. 그 10여m 아래 난간에서는 그녀를 지키는 50대 노동자 4명이 30일째 노숙중이다.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회사 쪽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정리해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부산 영도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사주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국무총리는 ‘174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나눠가지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이 해고노동자들의 딱한 처지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힘을 보태는 건 당연하다.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를 다녀온 시민들만 만명이 훨씬 넘는다. 이번 주말 세번째 희망버스가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다시 출발한다.
매일 저녁 조선소 앞에선 85호 크레인을 위한 길거리 미사가 열리고 일부는 촛불을 밝힌 채 밤샘 노숙으로 마음을 포갠다. 주말마다 그곳을 찾아 108배를 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크레인을 올려다보며 몇시간씩 화살기도를 쏘아 올린다. 서울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선 24시간 내내 릴레이 1인시위가 계속되고 시청 앞에선 무기한 단식농성이 진행중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부산까지 천릿길을 다리를 절뚝이며 걸었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폭염 속을 내달리며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알린다. 어느 하나 초인적이지 않은 일이 없다.
하지만 반년 넘게 한진중공업 사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다. 사측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핵심이다. 온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진 사태에 대해 분노와 간절함을 전달하지만 ‘너희는 짖어라. 내 알 바 아니다’로 일관한다. 지난달 국회 출석을 앞두고 출국해서는 한달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본독재 시대라지만, 일개 기업의 회장 따위가 온 나라를 상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 많은 이들이 단식하고, 천릿길 걷고, 삼보일배 하는 게 조남호 일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서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회장의 측근들은 용의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는 역린의 전설까지 신봉하는 듯하다. 한진중공업 내부에서 85호 크레인은 회장의 역린인가 보다. 그럴 경우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회장님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온 국민을 대상으로 전쟁이라도 불사할 태세다.
해고노동자 김진숙에게도 초지일관한 역린이 하나 있다. 노동자를,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지옥 같은 크레인 위에서 반년 넘게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런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로 공화국 시민들의 역린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역린이 그런 것처럼, 김진숙이나 공화국 시민 된 모든 이들은 사람을 함부로 하는 집단에는 화산처럼 폭발한다.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건 개인의 콤플렉스를 전근대적 방법으로 표출하는 권력자의 역린과는 차원이 다르다. 민중의 역린을 건드려서 생긴 폭발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연코, 없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권력자들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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