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민의와 국회의 괴리감은
‘자장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자장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지난주 ‘짜장면’이 마침내 표준어가 됐다. 사람들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난 한번도 자장면이라 말한 적 없다’는 이도 있고, 뉴스를 끝낸 남녀 앵커는 그동안 자신들도 방송에서 자장면으로 발음하느라 어색했다고 토로한다. 일상생활에선 사어에 가까운 자장면이란 말이, 교과서나 언론매체에서는 유일한 표준어로 통용되던 규정현실과 실제의 괴리감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같은 날,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그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민의와 국회의 괴리감은 ‘자장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성희롱 파문을 일으켰던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이다. 재적 의원 297명 중 198명의 찬성표만 얻으면 되는데 찬성은 111표에 그쳤고 반대는 무려 134표에 이르렀다. 한나라당은 이미 오래전 강용석 의원에 대해 당원조차 될 수 없다며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출당을 결의했고, 국회 윤리위원회는 제명안을 통과시켰으며, 법원은 징역형의 유죄판결을 내렸음에도 그렇다.
시민단체들이 국회의 낮은 인권수준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회의원들의 패거리주의는 절망스럽다. 그들은 국회법을 핑계로 방청객과 기자를 내쫓고,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막고, 본회의장 출입문을 걸어 잠근 채 기록에도 남지 않는 무기명 투표로 안건을 처리했다.
과자 바구니 뒤에 큰 거울을 설치하고 아이들에게 과자를 하나씩만 가져가라고 말하면 거울이 없을 때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거울이 없을 때는 절반 넘는 아이들이 하나 이상의 과자를 가져가지만, 거울이 있으면 단 한명도 하나 이상의 과자를 가져가지 않는다. 거울이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자의식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자의식이 아이들에게 사회규범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합의하면 공개로 할 수도 있는 제명안 처리를 비공개로 고집한 후 부결시킨 국회의 행태는 거울 자체를 깨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막가파의 작태와 다르지 않다. 김형오 의원의 강용석 옹호 발언은 우리 국회가 얼마나 자의식이 무너진 집단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좌다.
김 의원 발언의 요지는 ‘당신들은 강용석에게 돌 던질 수 있을 만큼 떳떳한가.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이다. 내년 총선에 불출마 선언했다고 아무 말이나 다 던지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 나름의 소신은 후배 의원들과 은퇴 폭탄주를 돌리는 술자리에서나 할 말이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 혹은 소수의 목소리를 누군가 대변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기가 찬다.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핏대 세우는 재벌 회장들의 주장을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소수자의 목소리라 우기는 격이다.
민의의 대변자라는 의원들이 자기 욕망을 대변하는 일에만 민감하거나 끼리끼리 이익의 대리자임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때 국민은 참담하다. 대의정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생길 정도다.
동료 의원들이 강용석 제명안을 부결시키는 현장에서 다만 안타까움으로 그들을 질타하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쉴 때조차 앉지 못한다는 몸으로 제주 강정 등에서 웃음과 목멤으로 힘을 보태는 국회의원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자장면이 결국 짜장면으로 복권되듯 김형오의 발언으로 상징되는 ‘강용석들’은 제대로 된 민의의 대변자로 복귀해야 옳다. ‘강용석은 여대생을 성희롱하고 국회는 국민을 성추행했다’는 민망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국민된 이의 처지는 얼마나 난감한가. 최소한의 자의식만 있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자장면이 결국 짜장면으로 복권되듯 김형오의 발언으로 상징되는 ‘강용석들’은 제대로 된 민의의 대변자로 복귀해야 옳다. ‘강용석은 여대생을 성희롱하고 국회는 국민을 성추행했다’는 민망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국민된 이의 처지는 얼마나 난감한가. 최소한의 자의식만 있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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