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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좋은 사람 나쁜 놈 현상

등록 2011-10-03 19:32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어쩌다 좋은 일 하면 칭찬 바가지
어쩌다 실수하면 몹쓸 놈 손가락질
이런 검증은 얼마나 불공정한가
가령 수십년 동안 악랄한 이름을 떨치던 고문기술자가 사업가로 변신하여 인권단체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치자. 고문기술자란 전력 때문에 더 강렬한 미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평생을 인권운동가로 헌신한 이가 회계처리 미숙으로 횡령의 실수를 했다고 치자. 인권운동가란 전력 때문에 더 호되게 비판받을 수 있다.

모두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두 사례의 당사자들이 공적인 활동을 위해 동시에 검증받는 순간이 오면 그 차이는 명확해진다. 고문기술자에겐 냉소와 의혹보다 반성과 대견함이 키워드로 적용되지만, 인권운동가에겐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존중과 신뢰까지 의심하며 혹독하고 집요하게 실수를 문제 삼는다. 늘 나쁜 놈이다가 어쩌다 좋은 일 한번 하면 칭찬이 바가지고, 대개 좋은 사람이다가 어쩌다 한번 실수하면 몹쓸 놈으로 손가락질 받는 그 유명한 ‘좋은 사람 나쁜 놈 현상’이다. 형들에게 떠밀려 병든 부모를 묵묵히 수발하는 막내 부부는 걸핏하면 욕먹고, 어쩌다 찾아와 비싼 물건으로 환심 사는 형제들이 효자효부로 자리매김된다면 얼마나 불공정한가. 그러므로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검증의 잣대는 더없이 공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변호사에게 일부 보수언론이 들이대는 검증의 잣대는 지나치게 편파적이고 유치하다. 그가 단일화 후보가 되고 말고를 떠나, 그를 지지하고 안 하고의 정파적 관점을 떠나서 그렇다.

시민운동가란 모름지기 ‘변두리 판잣집에 살아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의 터무니없는 윤리규정을 적용한 ‘박원순, 강남 호화아파트 거주 논란’ 등의 자가발전은 민망하다. 재벌 후원금을 받아 사회사업을 했다는 지적질은 자가당착이다. 평소 보수언론들의 친재벌적 행태를 고려하면 재벌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박원순을 칭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시민운동가 주제에 자녀를 해외유학 보낸 사실을 언급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대목에 이르면 찌질함의 원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다 결국엔 부부 금실의 정도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잣대로 검증하겠다고 나설 태세다.

검증을 한다면서, 온몸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똥 묻은 이들에겐 거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작은 티끌 하나를 빌미로 승냥이떼처럼 물어뜯는 일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아마도 우리 역사상 가장 기막히고 부끄러운 검증의 기억은 1997년 대선 당시 한 극우 잡지가 주최한 사상검증 토론회일 것이다. 모든 대선 후보를 다 초청하는 형식이었지만 그들이 겨냥한 것은 자기들 기준에서 빨갱이라 단정한 김대중 후보였다. 그들은 김 후보를 모욕 주고, 훈계하고, 반성을 강요했다. 기막힌 것은 이런 특정 후보에 대한 심리적 테러를 공중파 3사가 몇시간씩 생중계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런 언론 환경에서 살고 있다.

검증의 잣대는 공정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정책능력이나 리더십을 평가하는 검증은 얼마든지 신랄할 수 있다. 하지만 온몸에 똥 묻은 이가 얼굴에 재 하나 묻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나무라는 식의 검증이라면, 희망은 없다. 더구나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유권자들조차 똥 묻은 이의 곁에 가면 악취가 밴다는 핑계로 그놈은 제껴두고 티끌 묻은 이만 비난하는 식의 프레임에 갇힌다면 더 그렇다.

그런 나쁜 놈 프레임이 깨지지 않는 한, 도덕적이고 헌신적인 삶에 충실한 이들은 공적 영역에 진출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결국 유권자들은 계속 악취가 풍기는 나쁜 놈들 곁에서 코를 막으며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한다. 좋은 사람 나쁜 놈 현상은 이번 기회에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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