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접촉사고 상대편이 문신을 보이면
짜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협상한다
선거라는 행위도 그와 비슷하다
짜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협상한다
선거라는 행위도 그와 비슷하다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앞. 고급 외제차를 탄 중년 부인이 내리자 주차요원의 태도가 더없이 사근사근하다. 5분도 안 돼 또래 여성이 탄 국산 레저용 승용차가 도착했는데 주차요원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 아줌마, 거기 그냥 두고 내리시라니까요. 내가 문득 충격을 받은 것은 과잉친절을 받은 이나 퉁명스러움에 노출된 이나 그걸 행한 이나 아무도 그런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타고 온 자동차만 봤을 뿐 얘기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주차요원은 무슨 기준을 적용한 것일까. 만일 사람을 판단할 때 돈이 아니라 인간의 훌륭함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는 너그러움, 정의, 배려, 지혜 등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런 특징들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환경에서 각자가 그에 합당한 인격적 대우를 받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그것이 단지 발랄한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띤 가치나 태도로 공유될 수 있는 공동체가 진짜 사람 사는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배의 어머니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단순하다. 돈 많고 성공한 사람이니까 돈에 집착하지 않고 서민이 부자 되는 정책을 펼 것이란 나름의 이유에서다. 그녀는 탐욕의 속성을 간과한 듯싶다. 97개 가진 사람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3개를 끌어모아 100개를 채우려는 전투적 욕망은 3개 가진 사람의 소박한 꿈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박한 꿈은 전투적 욕망을 당해내지 못한다. 결국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면서 탐욕의 태도만 내면화한다. 1930년대 미국의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의 임금 차이는 40배였는데 현재는 그 차이가 340배가 넘는단다. 탐욕의 한 상징적인 결과다.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석한 20대 젊은이들이 물대포 맞는 상황은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아리다. 하지만 한쪽에선 왜 공권력이 물대포까지 쏘게 만드느냐고 혀를 찬다. 부자감세의 도가 지나치다고 비판하자 한쪽에선 세금폭탄 때문에 부자들이 다 외국으로 나가 깡통 대한민국이 되면 어쩔 거냐고 종주먹을 들이댄다.
투표란 내 희망과 간절함, 기대와 설렘을 누군가에게 위임하는 행위의 또다른 이름이다. 내 마음을 빌려주는 일이다. 투표 안 한다고 경찰 출동하지 않고 쇠고랑 차지 않는다. 투표 참여만이 절대정의도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빌려주는 일에 소홀하면 내 뜻과 정반대로 진행되는 일들을 수시로 접해야 하고 그저 분노하고 기막혀하며 뒷전에서 궁시렁거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건 확실하다. 정신건강에도 좋을 게 하나 없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편이 몸에 문신을 하고 있는 종류의 사람이면 움찔하게 된다. 분노와 짜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협상한다.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을 무력을 경계해서다. 어떤 연구의 결과다.
선거라는 행위도 그와 비슷하다. 내 마음을 빌려주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정치·행정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례해진다. 우리가 익히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가 보유할 수 있는 무력은 투표를 통해 내 마음을 잘 빌려주는 일이다. 어떤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든 내 마음을 빌려주는 일에 적극적이란 그 사실만으로도 권력집단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눈치를 보고 예의를 지킨다.
시인 이문재는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 노래했다. 시인의 언어를 빌려 표현해 보자. 내 마음을 빌려주는 일에 동참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내일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일. 내 마음을 빌려주는 날이다. 기도하는 날이다.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내일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일. 내 마음을 빌려주는 날이다. 기도하는 날이다.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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