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편법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정치검찰, 행패종편은
시대착오적인 공룡의 모습이다
시대에 정치검찰, 행패종편은
시대착오적인 공룡의 모습이다
벌써 14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그날 우리는 김대중 차기 정부의 ‘속살’을 엿보기로 했다. 엄청난 보고서들이 있다는 걸 안 이상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역사적인 정권교체 이후의 청사진을 미리 보는 일에 직업적 본능이 발동했다. 요즘 분위기에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 우리는 웬만한 후과는 감수하겠다고 작심했던 것 같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을 기다려, 새 정부가 준비중인 개혁정책 보고서 뭉치들을 성공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파문으로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김대중 정부는 출범 전부터 국방개혁 보고서를 당내 군 출신 2명에게 따로 주문할 정도로 군 문제에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러나 군보다 더 센 신흥 ‘권력’의 존재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이 지나고 권력을 내려놓은 야당 핵심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는 게 바로 검찰과 언론에 대한 사전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유별나게 정치검찰의 길을 내달렸다. 통상 검찰은 정권 초 권력의 칼 노릇을 자처하지만 임기 말이면 감춘 발톱을 드러내 권력 핵심을 겨냥해왔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과시하고 조직을 보존해온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임기 후반 들어 권력 핵심의 비리 의혹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데도 아직 권력의 품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다.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가 도를 지나쳐 국민들과 너무 멀어져 버렸다. 에스엘에스(SLS)그룹 사건에서 최고 실세를 파헤친다지만 주변에서도 별로 기대를 안 하는 눈치다. 이상하게도, 표적사정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전직 총리 사건에선 연타석 무죄를 받아 ‘야당탄압’ ‘정치검찰’이란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검찰은 그리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무죄선고가 잘못됐다며 반박문까지 내고 판사에게 따지고 든다. 누리꾼들의 비웃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네르바 사건으로 그렇게 굴욕을 겪고도 다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단속하겠다고 정권의 총대를 메고 나선다. 노골적인 정치검찰의 모습이다.
보수언론들도 오십보백보다. 민주정부들을 사사건건 흔들어대던 그들이 현 정권과는 초기부터 낯간지러울 정도로 코드를 맞춰왔다. 결국 지난해 종합편성채널이란 큼지막한 선물을 받았다. 정권 비리는 애써 못 본 척,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인고의 세월 끝에 사실상 언론이기를 포기한 대가로 얻어낸 성과다. 그런데 선물 덩어리가 너무 크다 보니 광고시장이 감당하기엔 벅차다.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광고 직거래에 나서면서 방송광고시장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들기 일보직전이다. 시청률과도 무관한 협찬광고를 요구받은 기업들은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넷이서 몰려다닌 끝에 황금채널은 이미 따낸 모양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장을 앞세워 유선방송사업자들을 윽박지른 건 명백한 청문회감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엔 언론계 전체가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검찰의 노골적인 친여 행보와 보수종편의 행패를 국민들은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편법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이들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공룡의 모습이다. 그대로 두고는 사회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23년 전 역사적 전환기에 그랬듯이 온 국민과 함께 한 시대를 매듭짓는 씻김굿이 필요하다. 지난 10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우선 검찰청문회, 종편청문회부터 시작해보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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