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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등록 2011-11-14 19:03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 남편에게
아내가 보낸 편지는 가슴을 저민다
“그래도 내게 한번만 기대보지 그랬어”
매주 토요일, 경기도 평택역에서 멀지 않은 상가건물 2층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탈진할 듯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봄꽃처럼 환하고 그곳에서 함께 놀고, 요리하고, 상담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유쾌함과 사랑이 흘러넘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희망퇴직자와 무급휴직자들도 본질적으론 해고노동자다)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주말 풍경이다.

도서관, 카페, 식당, 놀이치료실, 상담실, 놀이방 등이 있고 옥상에는 야구 연습장이 들어선다. 6000여명의 사람들이 2억원의 돈을 모으고 60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재능을 기부해 5개월 만에 이뤄낸 일이다. 치유자 정혜신의 말처럼, 와락은 기적이다.

와락을 방문한 이들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를 연발한다. 서로에게 그런 존재라는 걸 상대방의 표정으로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명진 스님처럼 눈 밝은 어른은 “와락에 와보니 극락이 이런 게 아니겠나”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와락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해고노동자와 가족대책위 엄마들에게 와락은 기적의 시작에 불과하다. 끔찍하고 억울한 죽음의 도미노 현상이 끝나지 않아서다.

2년 전 2600여명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평택은 한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 2년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들의 젊은 아내들까지 합치면 20명 넘는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연사했다. 와락을 준비하는 5개월 동안에도 한달에 한명꼴로 사람이 죽어갔다. 축제위원회와 장례위원회를 동시에 운영하는 듯한 와락 관련자들의 자기분열적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렵다.

77일의 파업기간 동안 해고노동자들은 죽음 각인에 이를 정도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해체당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우리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구나’라는 사실을 세포 속에 각인해야 했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이 바닥까지 무너진 상태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가장이나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통을 들이켜기만 하고 내뱉지 못했으니 심리적 질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자 남편에게 아내가 보낸 편지 한 구절은 가슴을 저민다.

“내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내게 한번만 기대보지 그랬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누군가에게 기댈 힘이나 의지조차 상실한 상태다. 와락은 그런 이들을 찾아 나서기 위한 베이스캠프다. 현재 와락과 끈이 있는 해고노동자는 100여명 정도다. 아직도 2500여명이 숨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상황. 심리상담을 통해 작은 숨구멍이라도 생긴 이들이 질식사 직전에 있는 동료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는 여정이, 와락이다.

인간은 누구나 엄마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고통과 고립의 시간을 겪고 있는 이들에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와락은 섬처럼 고립된 이들에게 엄마처럼 다독이며 여기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는 공간이다.

와락을 돕는 일, 어렵지 않다. 누군가와 손잡고 와락에 와서 함께 밥 먹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면 된다. 어쩌면 2500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며 당신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는 일이다. 그것으로, 엄마가 필요한 동료를 찾아 나서는 와락의 해고노동자와 가족대책위 식구들은 엄마를 얻는다. 그러면 희한하게 당신에게도 엄마가 생겨난다. 와락은 그런 상호간의 ‘엄마성’을 기적처럼 체험하는 공간이다. 꼭 와보시길. 와락(www.thewarak.com).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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