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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유사 애정남’ 박만

등록 2011-12-05 19:22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전담팀이 국민 전체의 일기장을
들여다보겠다는 허무맹랑한 발상,
내일부터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
애정남은 요즘 가장 인기있는 개그 코너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말이다. 적절한 축의금 액수를 정해주는가 하면 여자친구와 애인의 기준도 명확하게 정리해 준다. 그녀가 물에 빠졌을 때 뛰어들어 구하면 애인이고 직접 들어가지 않은 채 긴 막대기로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여자친구란다.

우리 일상과 속마음에는 애매한 지점이 무척 많은데 그 미묘한 지점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감받는 느낌과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 공감과 안도가 애정남의 폭풍 인기 비결이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행위 자체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 속마음보다 정해주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유사 애정남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최근 박만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행태는 유사 애정남의 전형적 모델이라 할 만하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다는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이 바로 그렇다. 국민의 사적 의사소통 수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전담부서인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1차로 시정권고를 하고 그 후 접속 차단 등의 제재를 하게 된다. 국민의 사적인 의사소통을 정부가 늘 주시하고 내용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임에도 방통심의위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검열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초당 수천개의 글이 올라오는 에스엔에스에서 모든 내용을 심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검색을 통해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표적 심의가 이뤄질 게 뻔하다. 오죽하면 한나라당에서조차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강제 삭제하겠다는 말이 나오느냐’며 과잉 충성이 지나쳐 권력을 남용한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의 유사 애정남에 대한 집착은 흔들림이 없다. 여야 정치권이 합의하여 2012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지만 박만 위원장은 국회의 결정마저 무시하고 방통심의위가 언론검찰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으로 전담팀 신설을 강행했다. 나라 걱정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공안검사 출신다운 저돌성이다.

규제 기능이 강화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에도 양보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박만 위원장이다. 그런 강고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심의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계몽적이고 억압적일지 아찔하다. 방통심의위가 표현의 자유 양보의 기준선을 정해주는 유사 애정남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말처럼 전담팀 10명이 국민 전체의 일기장을 들여다보겠다는 허무맹랑한 발상이지만 실제 내일부터 그런 일들이 현실화된다.

오래전 동독의 국가안전기구는 체제유지 차원에서 동독 시민 1600만명의 개인정보 컴퓨터 파일을 만들기 위해 특정인에 대한 농담이나 소문뿐 아니라 낙서까지 조사하고 검열했다. 그 결과 시민들은 나중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자체가 죄가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국가안전기구의 개인정보 컴퓨터에는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 들어 있으니까. 그런 시대와 시도는 모두에게 더없이 불행하다.

애정남이 정해준 거 안 지킨다고 쇠고랑 차지 않고 경찰 출동 안 한다. 그냥 지키면 좋은 아름다운 약속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유사 애정남들은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위협한다.

행정기관이 표현물을 심의하고 차단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그것이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인 경우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건 천부의 인권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한다.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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