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이창한 판사’들을 기대한다

등록 2011-12-26 19:22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굿바이 정봉주’ 행사는 국민의
상식과 법감정을 무시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몰고온 필연적 거사다
청소년들이 친구를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왕따 현상이 갈수록 집요하고 잔인해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친구 2명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해학생들이 아무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겪을 고통에 무감각한 것은 물론, 또래끼리 있을 수 있는 놀이의 일종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의 숨결대로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몇몇 행태는 왕따 가해학생들과 비슷하다. 자신들이 내린 판결로 피고인들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는 전혀 상관 않는다. 판사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권위와 이익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다.

어제 서울중앙지검 앞에선 한겨울에 빨간 장미 수천송이가 만개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수감되는 정봉주 전 의원을 격려하는 ‘굿바이 정봉주’ 행사장에서의 일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사법부에 대한 쓰레기 수준의 협박이라고 매도하지만, 국민의 상식과 법감정을 무시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몰고온 국민들의 필연적 거사다.

그 현장에서 ‘정봉주가 없는 곳이 감옥’이라고 연설했던 노회찬 전 의원은 두달 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으로 일부 유죄 선고를 받았다. 범죄 현장을 신고했는데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고 범죄를 고발한 사람만 범죄자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 이 또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부조리한 작품이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04일 만에 무죄로 석방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피맺힌 고백은 가슴을 때린다. “이번 일로 저와 가족이 파괴됐습니다. 항우울제 등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사법부는 검찰의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에 발맞추어 피고인이 겪을 고통은 아랑곳없이 사법부의 위엄만을 과시했다.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등을 이유로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보석 신청을 기각했다. 그 결과 빛나던 한 젊은 논객은 집에서도 모자를 쓰고 지내며 두려움 때문에 혼자서 외출조차 쉽지 않은 지경이 됐다.

얼마 전,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의 행위도 친일에 해당한다는 상급심 판결이 나왔다. 당시 실정법을 따랐더라도 반대 의견 등을 내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친일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적용 법령과 공소사실을 기초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하므로 죄가 없다는 것이다. 동업자 방어 논리에 치중하다 판사 스스로를 자동판매기 같은 판결기계로 비하한 느낌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중차대한 고비들을 그런 판결기계들에 맡길 수는 없다. 지혜로우면서도 다정한 판관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감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꼭 꿈일 필요가 있는가.

며칠 전, 간첩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숨진 어부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족이 참석한 법정에서 이창한 재판장은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은 것에 대해 사법부의 일원으로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울컥. 어느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국민들이 사법부에 별을 따다 달라고 하는가, 달을 따다 달라고 하는가. 억울하게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판결해 달라는 것뿐이다.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설마, 이창한 판사만 판사인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겠는가.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