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심리기획자
공공복리의 적합성 판단에서부터
재벌회장 구속에 따른 경제 걱정까지
법 이외의 현실적 고려가 너무 많다
재벌회장 구속에 따른 경제 걱정까지
법 이외의 현실적 고려가 너무 많다
지난주 부산고법은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예비타당성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한 옳은 판결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위법은 맞지만 사업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 혼란을 막기 위해 사업 시행 계획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감정은 법관들과는 좀 다르다. 살인을 했지만 이미 사람이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냐, 사람을 때린 것은 잘못이지만 기왕 패던 것이니 아예 죽을 때까지 패란 말이냐 등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룬다. 법관들 처지에서는 국민들의 무지와 감정적 대응이 답답하고 짜증날 수도 있다.
행정처분이 위법하면 취소하는 게 원칙이나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는 이른바 ‘사정판결’의 취지를 몰라서 하는 볼멘소리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를 판단하는 법관의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다고 느낀다. 법관은 자신들이 합리와 법원칙에 의해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믿는다.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그 판단의 분야가 오지랖이라고 할 만큼 무차별적으로 넓다는 데 있다.
공공복리의 적합성에서부터 재벌 회장을 구속하면 나라경제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고민까지 개입 안 하는 문제가 없다. 법원칙 이외에 오지랖 수준의 현실적 고려가 너무 많다.
얼마 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한 판사는 법원의 현행 근무평정 항목들이 모두 주관적인 것이라 판사들이 평가자인 법원장의 눈치를 살피며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니 법정에서 판사의 공정하지만 주관적인 판단과 아량에 온전히 기대야 하는 재판 당사자들은 더 말할 게 없다.
판사들이 판결할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개전의 정’이다. 한마디로 잘못에 대한 뉘우침의 정도다. 본인이 어떻게 뉘우쳤느냐보다는 판사가 반성의 빛이 있다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순간 판사의 개인적 취향과 아량의 정도는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내 삶의 자유가 타인의 취향과 세계관에 의지해야만 결정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법관들이 내적 균형을 잡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재판 당사자로서는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판사들의 오지랖이 더해진다는 느낌이 들면 아득하고 막막한 심정은 무한대에 가까워진다.
임기 내내 칼국수만 먹은 대통령은 자기 청렴성을 과신하게 된다. 아무리 큰 측근 비리가 있어도 초연한 자세로 자신이 가진 도덕성과 청렴성을 앞세우며 미동도 않는다. 판사 또한 그렇다. 합리와 원칙을 지키는 일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고만 믿으면 외부의 어떤 호소나 문제 제기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있다.
몇해 전 대법원장은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법관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이 신임 법관 시절에만 필요한 말일 리는 없다. 오히려 법관의 경력이 쌓이고 오지랖이 넓어지는 시점에 꼭 기억해야 할 판관의 지침에 가깝다.
공공복리나 국가안보, 나라경제 따위의 이유를 들먹이지 말고 법관은 법적 판결에만 집중하면 된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위법한 것이라면 공사 자체를 취소하는 게 옳다. 그에 따른 국가재정의 효율성이나 기술·환경침해적 측면 등은 사업 주체인 행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이번 낙동강 소송의 경우 위법하나 취소하지 않는다는 ‘사정판결’은 판사들의 명백한 오지랖처럼 느껴진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