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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영혼 없는 공권력의 무서움

등록 2012-03-26 19:15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사람이 죽고 영혼이 붕괴되는데도
나 몰라라 풍악을 울리는 게
민주공화국의 공권력이 할 짓인가
경찰청이 ‘쌍용자동차 점거농성 조기해결’을 최근 3년간의 주요 사건 중 ‘베스트 5위’로 선정해 발표했다. 2주일 전 일이지만 그 분노와 아득함으로 아직도 아리다. 처음엔 ‘워스트 1위’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용산참사와 더불어 쌍용차의 폭력적 진압은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과 잔악함을 반성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런 착각을 한 게 당연하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경찰은 쌍용차 노조원들에게 테러작전에나 쓰이는 5만볼트의 테이저건과 고무총을 난사했고, 한 해 최루액 사용량의 90%를 옥상에서 퍼부었으며, 장기간의 단전·단수, 응급치료 방해, 토끼몰이 진압을 강행했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경찰이 이미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까지 폭행하고 진압장비 사용이 과하다며 경고할 정도였다. 그 살인적 진압의 후유증으로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망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사건을 공안사건 수사의 모범 사례라고 자랑질한다. 이럴 수는 없다. 프로야구에서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린 한 선수는 유난히 빈볼 위협에 시달렸다. 홈런 세리머니가 얄미울 만큼 커서 투수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운동경기에서도 그런 정도다. 하물며 사람이 죽고 영혼이 붕괴되는데도 나 몰라라 풍악을 울리는 게 민주공화국의 국가공권력이 할 짓인가.

경찰청이 뽑은 ‘베스트 10’에는 초등생 인질강도 피의자 검거, 연쇄 부녀자 납치강도 살인범 검거, 금은방 강·절도단 일망타진 등 밖으로 내세울 만한 강력범죄 사건이 많다. 베스트 5위에 선정된 쌍용차 진압도 그런 실적과 자랑질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자신의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쌍용차 사태 해결을 가장 내세우고 싶은 동시에 가장 보람있는 자신의 업적 1위로 주장했다. 모범사례 선정은 그 보람과 자부심이 현재까지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는 방증이다.

공권력을 담당하는 이들은 공권력 집행자 이전에 국민이고 사람이다. 그 사실을 망각하고 공권력 집행기계로 빙의해 조직의 논리나 역할론만 앞세우다 보면 영혼 없는 공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공권력 집행 중에 목숨을 잃거나 부상 입은 경찰관들을 마음 아파하지 않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이웃이거나 부모형제가 아닌 경찰관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공권력이란 ‘우월한 의사의 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힘’이므로 그 힘이 행사되는 국민의 입장을 먼저 따지는 것뿐이다.

연구에 따르면, 군인 저격수와 경찰 저격수가 고통을 받는 정도는 현저하게 다르다. 군인 저격수는 표적살인을 하고도 주변 사람과 소속 집단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만, 전장이 아닌 사회에서 작전을 하는 경찰은 피아의 구분이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그 고통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이다.

폭력진압의 후유증으로 해고노동자가, 아내가, 노동자의 늙은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도 경찰서 앞을 못 지나가는 아이가 있고 아빠를 보호하겠다며 장난감 권총과 칼을 차야만 외출하는 아이가 있다. 쌍용차 해고자 대부분은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품고 산다 말한다. 지금도 ‘함께 살자’라는 문신 같은 조끼를 입고 공장 앞에서 노숙하고 있다.

그런 이들 앞에서 모범사례라고 자화자찬하는 공권력을 어떻게 영혼이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영혼이 없다면 생각이라도 있어야 최소한의 염치를 차릴 수 있는 법이다. 그게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자들을 경호하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사과하고 철회해야 마땅하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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