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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정동영 모델을 생각한다

등록 2012-04-23 19:20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진짜 정치인’이 전무해 보였던 건
발을 땅에 딛지 않은 생각 때문
야권 ‘사실상 승리’ 말할 때 아니다
살다 보면 그간의 시간들을 지우개로 싹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면 이번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까지 생긴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현은 거의 불가능한 욕망이다. 어렵게 내 삶을 리셋해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정동영은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싹 바뀌었다. 과장하자면, 마치 혈액형이 바뀐 사람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지난 3년간의 정동영은 우리가 이전에 알던 그 정동영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현장이다.

지난 3년간 정동영은 줄곧 현장의 정치인으로 살았다. 어느 현장에든 그가 있었다. 용산, 한진, 명동 마리, 쌍용, 강정 등 목소리 낮은 이들이 가슴을 쥐어뜯는 현장에 달려와 그들과 함께 비 맞거나 어깨를 겯고 분노했다.

그런 현장에서 여러 차례 정동영을 보았다. 그가 나설 때마다 야유와 분노가 소나기처럼 쏟아졌고 ‘여기가 어디라고 당신이 나서느냐’는 멱살잡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동영은 다 제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고 천덕꾸러기처럼 한쪽 구석에 앉아 끝까지 힘을 보탰다. 정치인의 쇼라고 코웃음 치던 이들도 초지일관한 그의 행동에 이제는 ‘쇼라도 정동영만큼만 해봐라’고 다른 정치인에게 일갈한다.

나는 지금 ‘정비어천가’를 부르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정동영은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다. 5월29일까지만 국회의원이다. 그의 향후 정치일정에 대해선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다.

다만 많은 국민들에게 ‘진짜 정치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행보를 통해서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를 따져볼 수 있다면 의미있지 않겠는가. ‘개인의 존엄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공동체, 그것과 상관없는 국가나 정치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상식처럼 말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정동영 모델’이다. 정동영 본인은 자신의 생각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단지 달라진 건 땅에 발을 딛고 하는 생각인가 아닌가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동영 모델’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 정동영 정도의 자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국민들로부터 ‘진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 전무했다시피 한 건 그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생각해서다. 나와 겉돈다는 느낌이 드는 정치인을 어떻게 지지하나. 내 고통이 무엇인지를 들어보지도 않으려 하는 정치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 것인가. 현장에 있지 않으면 살아있는 사람을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야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사실상의 승리로 볼 수도 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쌍용차 분향소 현장 등에서 경찰이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며 과격진압을 일삼고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현장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상황이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사실상의 승리 어쩌고를 우물거리는 정치인을 보는 국민들의 절망이 어떠할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게 땅에 발을 딛고 하는 생각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 19대 의원들에게 ‘정동영 모델’이 잠시의 화두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기, 사람이 있어서다. 그간의 의정 활동에 비추어 이번에 꼭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좋았을, 정동영을 포함한 18대 몇몇 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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