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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최성영 경비과장에게 묻다

등록 2012-05-28 19:21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다가 온몸이 저려서 오한이 올 때처럼 신음했다. 광주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죽음을 맞은 시민군의 모습이 담긴 1980년 5월27일의 사진이다. 10개 이상의 관이 쓰레기차에 포개져 실려 있고 소독약 살포로 주변은 안개처럼 뿌옇다. 계엄군의 의도적인 전시효과였든 물자 부족으로 제대로 된 운구차를 구할 수 없어서 벌어진 상황이었든, 한때 누군가의 아비이고 연인이고 아들이고 조카였던 이들의 주검이 쓰레기차에 실려 있는 모습은 아리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시점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닷새 전 남대문경찰서와 중구청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노조 분향소를 철거했다. 22번째 쌍용차 사망자가 생긴 뒤 그들의 서러운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상주단이 차려 놓은 분향소였다. 믿을 수 없게도 경찰 등은 영정사진과 분향객 수천명의 마음이 담긴 방명록 등을 쓸어 담아 중구청 마크가 선명한 쓰레기차에 던져 넣었다. 아득한 느낌뿐이다. 아무리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그들 공권력이 망자 22명의 영정사진과 분향소 물품을 하필이면 쓰레기차에 쓸어 담은 이유를 금방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물자 부족으로 차량 수배가 어려워서 그랬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모종의 정치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쓰레기차를 동원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 이 정부는 노동자들의 이런 생떼 같은 불법행위를 쓰레기만도 못하게 여긴다. 눈썹 하나 까딱 안 한다. 헛고생하지 말라. 경고다.” 끔찍하고 기막혀서 상상도 하기 싫지만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다.

 서장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이번 작전을 감행했다고 알려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행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현장에서 구청 직원에게 구체적 물품을 지적하며 직접 철거 지시를 내린 이의 말답게 단호하다. 그런 공권력 집행자들에게 ‘너희 부모나 형제가 죽었어도 이럴 수 있느냐’는 시민들의 울부짖음은 늘 똑같은 답변으로 되돌아온다. ‘그런 상황이라도 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지금처럼 행동할 것이다.’ 질문의 의도를 잘못 짚었다. 우리가 궁금한 건 공권력 집행자들의 신념이나 부모형제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본질적인 태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념이 아니라 예의라는 말이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안내견에겐 무조건적인 복종 훈련과 함께 주인의 명령과 상관없이 안전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지적 불복종 훈련’이 무척 중요하다 들었다. 나는 국가공권력 집행자들이 이런 지적 불복종 훈련의 의미를 고민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 권력자를 위해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쏘거나 고문하거나 인간이길 포기하는 행위까지를 공권력 집행이라는 미명 아래 모두 용인한다면 그건 이미 인간의 사회가 아니다. 개도 그렇게는 안 한다는 것이다.

 큰 반향이 없을지라도 나는 이 사실을 꼭 내 손으로 기록해 놓아야겠다.

 2012년 5월24일 오전, 대한민국 공권력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 최성영의 주도로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침탈하여 22명의 영정사진과 분향소 물품을 쓰레기차에 던져 넣었다. 그 순간 망자들의 영혼은 기우뚱했고, 아직 산 자인 수많은 시민들은 마치 자신도 그 쓰레기 더미 속에 던져진 듯 아득했다.

 공화국의 시민을 이렇게 쓰레기 취급하는 권력은 결국 쓰레기 정권으로 낙인찍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역사가 그렇게 말한다.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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