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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 칼럼] 퍽치기 소통

등록 2012-06-18 19:18수정 2012-06-19 15:20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퍽치기는 공포스럽다. 최소한의 의견교환조차 불가능하다. 지갑 내놔라, 비밀번호를 불어라, 어쩔래 따위의 협상도 없다. 느닷없이 달려들어 뒤통수를 가격한 뒤 돈이나 물건을 빼앗는다. 완벽한 일방성. 그게 전부다. 만일 누군가와의 의사소통이 퍽치기를 상대하는 것 같다면 그 무력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퍽치기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퍽치기 집단에겐 그게 나름의 소통 방법이다. 그래서 무섭다.

살다 보면 일시적으로 퍽치기 소통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끼리끼리 소통이 유별나고 그 유별남이 원 밖 사람들과의 접점을 전혀 찾지 못할 때 그렇다.

가령 연인들. 그들은 둘만의 비밀이 많고 심지어 자기들끼리만 쓰는 단어도 있다. 남다른 사랑 표현을 ‘방울방울한다’ 말하기도 하고, 기형도 시집의 페이지 숫자만으로 은밀한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제3자의 눈엔 뜻 모를 숫자를 통한 그들의 소통이 일종의 난수표로 느껴진다. 둘만 있을 땐 아무 문제도 아닌 일들이 남들에겐 유치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가족, 동창, 동아리 등 끼리끼리 소통이 특별한 집단에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이석기 의원으로 대표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는 끼리끼리 소통의 한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자기들끼리의 문법으로 말한다. 연인끼리만 쓰는 배타적인 언어를 쓰면서 타인들에게 왜 못 알아듣느냐고 짜증을 내는 격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석기는 국민 위에 당원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당원의 정서와 요구가 곧 국민의 요구’라고 일축한다. 두달 만에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밀실에서 나누어야 할 노골적인 사랑 행위를 만인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했으면서도 우리들은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데 왜들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찬다. 그건 밀실에서 둘이 발가벗고 있을 때나 할 말이다. 보는 이들을 멘붕(멘탈붕괴)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자신들의 행태를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다.

그렇게 이석기들까지 나서지 않아도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충분하고 철저하게 멘붕사태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4대강, 용산참사, 쌍용차, 강정 사태 등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문제해결 방식은 퍽치기 소통 그 자체다. 끼리끼리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들 원 밖에 있는 이들의 말은 들어준 기억이 없다. 우기고 윽박지르고 뻔하게 해명할 뿐 존중하지 않는다. 그림자 취급을 당했다는 느낌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기력해지지 않으면 외려 그게 이상하다.

이명박 정권과 이석기. 전혀 다른 이념과 세계관을 가진 그 둘이 소통불능이라는 공통의 영역에서 조우했다는 느낌이다. 이명박 정권에겐 그런 기대를 버린 지 오래지만 적어도 ‘이석기들’은 소통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 기대가 여지없이 깨지고 이명박 정권과 이석기들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당연하고도 새로운 깨달음은, 착잡하다.

몇 년 전 젊은 광고인 박서원이 세계를 놀라게 한 반전 포스터는 볼 때마다 충격적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문구 위에 군인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포스터를 둥글게 말아 그 총구가 결국 자신의 뒤통수를 향하게 하는 작품이다.

타인 안에 있는 괴물성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나의 안에도 괴물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괴물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 퍽치기 소통하는 괴물들을 더는 만들지 않을 최소한의 팁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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