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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응답하라 MBC

등록 2012-10-22 19:23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20년의 습관이 참 무섭다. 밤 9시만 되면 아직도 티브이 리모컨으로 11번을 누른다. 뉴스데스크를 보기 위해서다. 최근엔, 뉴스를 보다가 탄식과 분노로 곧 티브이를 끄거나 다른 채널로 돌리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 사귀는 남자 때문에 알게 된 보신탕 맛을 잊지 못해 이별 후에도 혼자서 보신탕집을 찾는 여자의 착잡한 심정이 이럴까.

최근 엠비시 뉴스의 여당 편향적 보도와 민망한 자사 옹호 보도는 보는 이가 다 오글거릴 정도다. 그 뉴스를 전하는 당사들만 모르는 눈치다. 이젠 편파보도를 넘어 김재철의 선전도구로 사유화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개인의 선입견일까. 아니다. 한 시사잡지가 수년간 계속한 조사 결과를 보니 엠비시의 매체 신뢰도는 지난 2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진희가 엠비시 사장을 하던 국보위 시절도 아닌데, 어떻게 4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신뢰를 받았던 언론사를 한 개인이 이토록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일까. 내부의 동조자들 혹은 동조 논리에 의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엔 권력(권위)을 획득한 세력에게 동조하고 인정해야만 주류가 된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전형적인 권위주위적 사회다. 권력과 권위에 동조하지 않으면 눈흘김이나 왕따를 당한다. 단지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문제제기 자체가 그른 것이 되고 윗사람은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 세뇌한다. 권력을 가지면 모든 게 용인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한한 법논리까지 등장한다. 권력에의 굴종이 거의 내면화된 느낌이다. 기존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권력을 얻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피해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209일간의 파업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9명이 해고되었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조합원들에겐 정직, 전보, 대기발령, 교육명령 등의 보복성 징계가 내려졌다. 교육명령은 가관이다. 인사권을 이용한 인권유린의 다른 이름이다. 기자, 피디, 아나운서 100여명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현업과 차단된 채 요가와 요리를 배우는 모습은 참혹하다. 엠비시를 초토화시키는 과정이 생방송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문제는 김재철 사장처럼 불합리한 권력을 용인하는 동조자들이 늘어나는 데 있다. 그런 동조 시스템이 없다면 100여명의 베테랑 언론인에게 김재철의 삼청교육대라 불릴 만큼 정신적 모멸을 강요하는 교육이 이토록 평화롭게 진행될 리는 없다.

이진숙 본부장은 ‘우리 뉴스가 파멸하고 있다’는 기자들의 탄식에 대해 ‘뉴스 밸류에 대한 가치판단과 시각차이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피디(PD)수첩>의 책임자는 작가들을 모두 내쫓아 사장의 의중에 맞춰 프로그램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일에 앞장선다. 동료들이 고문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일에 동조하는 일은 언론인 이전에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는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에 가깝다. 동조자들은 그것이 세상의 흐름이라고 우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런 권위주의적인 논리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엠비시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그 엠비시로 돌아가기 위해 아직도 꼿꼿하다. 어제 문화방송 노조가 주최한 시민문화제의 제목은 ‘응답하라 엠비시’였다. 이제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그의 동조자들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진짜 엠비시맨들에게 여전한 응원과 신뢰와 사랑을 보낸다. 이겨달라. 이제 불합리한 권력에 동조하지 않고도 결국엔 이기는 이들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그게 엠비시라면 더욱.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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