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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짝퉁 ‘천리마운동’과 ‘한강의 기적’ / 김보근

등록 2013-03-06 19:18수정 2013-05-16 16:25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짝퉁으론 성공할 수 없다.’

위압적으로 느껴졌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국민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제2 한강의 기적’이 새로운 성공이 아니라 ‘짝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졌다.

‘제2 한강의 기적’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적 성취는 지금 이곳에 적합한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이 적용될 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수위 활동과 장관 및 청와대 인선, 첫 대국민 담화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의 모습 속에 ‘새로움’은 없어 보인다. 지시하고 명령하던 ‘아버지의 방식’으로도 또다시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만 같다. 옛 방식으로는 새 기적을 만들 수 없다. 김일성 수상이 주도했던 북한판 ‘한강의 기적’인 천리마운동의 성공과 그것을 재현하려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2 천리마운동이 보인 한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권의 원조가 급감했던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천리마운동은 북한이 자랑하는 혁신적인 대중운동이다. 운동의 출발점은 김일성 당시 수상이 1956년 12월27일 강선제강소를 방문해 노동자들에게 증산을 호소한 것이었다. 당시 김 수상은 노동자들에게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북한은 제1차 5개년계획이 끝나는 1961년 공업 총생산액이 1956년에 비해 2.6배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해마다 21.5%씩 성장해야 가능한 수치다. 당시 북한은 “공업생산에서 곧 일본, 이탈리아를 따라잡고 앞서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북한 경제의 최대 위기였던 ‘고난의 행군’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제2 천리마운동을 주도했다. 제2 천리마운동은 ‘성공한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출발점부터 닮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12월24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옛 강선제강소)를 방문해 증산을 호소한 것이다. 이후 현지지도-모범창출-전국확산의 방식으로 생산을 독려한 점도 원형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제2 천리마운동이 낸 경제적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투자재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민들의 헌신성과 창의성, 애국심 등에 호소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운동방식은 똑같았지만, 두 운동 사이에는 50년이라는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차 속에 담긴 많은 차이들이 원형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두번째 천리마운동을 짝퉁으로 만들어버렸다.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도 남한 경제가 짝퉁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높일 것 같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시계가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1970년대에 멈춰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선이고 내가 답이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외침으로 기적을 만들 수는 없는 시대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추가제재와, 북한의 ‘워싱턴 불바다’ 주장이 완강히 맞서고 있다. 이런 갈등의 궁극적 해결책은 북한에 체제 보장책을 제시해 대타협을 이룬 뒤, 북한이 스스로 시장 시스템 등을 수용해 체제를 서서히 변화시키도록 하는 길밖에는 없다. 이때 남한에서 모범이 될 수 있는 시장경제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짝퉁 한강의 기적’은, 남한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민족의 공동번영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도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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