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심리기획자
서울 출생으로 돼 있지만 전북 군산에 있는 선산을 매년 다니고 있으니 호남 지역을 고려한 검찰총장 인선으로 이해해 달란다. 개그콘서트의 패러디 돋는 대사가 아니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발표다. 인수위 시절부터 숱한 자질 논란과 비토가 있었음에도 결국 청와대 대변인이 된 윤창중의 말답다.
‘이 정도 수준의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거듭 경악’했었다는 윤창중의 말을 부메랑으로 차용해 보자. 소통의 시발점이랄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의 인식과 말발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국민과의 소통 운운하는 청와대의 수준에 거듭 경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윤 대변인의 지역 안배 설명을 들으면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 옛날 고문 경찰들의 발표 한 대목을 떠올린다. 대변인의 한낱 말실수일 수도 있는 사안에 지나친 해석인가. 아니다. 그 둘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것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인식과 수준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아득하기까지 하다.
어린아이들은 숨바꼭질할 때 꿩 머리박기처럼 방 한가운데서 궁둥이를 치켜든 채 바닥에 엎드리거나 수건으로 자기 눈을 가려서 숨는다. 내가 안 보이면 술래도 내가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다. 문제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일차원적 인식과 ‘새대가리’ 같은 행동이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공적 영역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데 있다.
관계의 본질은 나도 있지만 너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꿩 머리박기는 상대는 없고 나만 있는 소통 방식이다. 특정 상황이나 말을 나만 그렇다고 믿으면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철저하게 일방형이다. 상대방의 의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청문회에서 뇌물수수 혐의를 추궁받는 이들은 모두 빌린 돈이라고 강변한다. 주고받은 이들끼리 그렇게 입을 맞추고 약속했으면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물고문을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자 그 많은 관계기관들이 모여서 장시간 토론 끝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하기로 결론을 낸 것도 마찬가지다. 워낙 다급해서 도출된 궤변 같은 변명이든, 대충 발표하고 공권력 동원해 눈 부라리면 무마될 것이라고 믿는 군사독재적 행태든 그 핵심은 자기합리화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믿고 결론 내면 남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자기착시의 극한이다.
실수로 여자의 팬티를 입고 집에 온 바람둥이 남편이 있었단다. 그걸 보고 기막혀하는 아내에게 ‘길 가다가 너무 이뻐서 사 입어봤다’고 입막음했다나. 공직자의 지역 안배 문제가 그만큼의 화급한 사안은 아닐 것임에도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그런 뒷담화에서나 유발됨직한 패러디 수준으로 느껴지는 것은 현재 청와대가 지향하고 있는 일상적인 소통의 방식이 그와 유사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설득하는 7가지 방법 같은 책을 달달 외운 이는 자신감에 충만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설득하려고 하는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책을 통독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원래 소통이란 그런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나 해결책을 상대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상대를 그런 합리적 행위자로 인식해야 제대로 된 소통이 시작된다. 그렇지 않은 모든 소통은 꿩이 자기 머리만 바닥에 박으면 다른 사람도 안 보일 거라고 믿는 일방형 소통에 불과하다.
국민과의 관계에서 그런 꿩 머리박기 소통법이 활개치는 정부라면, 생각만으로도 우울하고 살 떨린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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