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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다시 창궐하는 보수 좀비들

등록 2013-06-16 19:37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한 달쯤 전 어느 주말 아침, 문 두들기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 보니 한 사내가 “○○신문, 잘 보시고 계시죠?” 한다. 신문 구독료를 받으러 온 줄 알았다. 주말로는 좀 이른 시간이라 골프 치러 가는 팔자 좋은 분들이나 등산 가는 부지런한 분들 말고 필자같이 좀 게으른 사람들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한 주의 피로도 풀 겸 오랜만에 늦잠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좀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진보 성향의 신문이고 그런 신문을 배달하는 보급소의 경제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빨리 구독료 주고 다시 좀 더 자려고 “얼마죠? 잠깐 기다리세요” 했다. 그랬더니 그 사내가 얼른 나를 잡으며 “○○신문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선물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지요?” 하고 물으니 “10만원 상품권입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사내는 구독료 받으러 오던 그 배급소 사장님이 아니잖아. 그래서 “왜 ○○신문에서 상품권을 줘요?” 하고 퉁명스럽게 되물으니 “○○신문 봐주셔서 고맙구요. 그래서 조선일보도 좀 봐주십사고” 했다. “1년간은 무료입니다” 하고 얼른 덧붙인다. 주말 아침잠 깨운 것까지 포함해 화가 난 필자가 “난 그따위 신문 안 봅니다” 하고 문을 닫으려 하니 급히 그 사내가 잇는 말 “중앙이나 동아 보셔도 됩니다” 한다.

최근 두어 달 필자가 좀 일찍 환할 때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아파트 입구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내. 필자가 지나치려면 어김없이 길을 막듯 다가서면서 봉투를 내 눈앞에서 휘젓는다. 만원짜리 현찰이 여러 장 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켜켜이 비껴 넣은 봉투를 휘저어 보이며 “조선, 중앙, 동아 보십시오. 십만원 현찰입니다. 1년간 무료입니다” 한다.

조중동 본사에서 설마 이런 일을 시켰을까? 아니면 남양유업처럼 밀어내기를 하는 건가? 옛날에는 그랬다던데. 그래서 배급소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할 수 없이 하는 건가? 필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최근 시청률을 올리려 혈안이 된 종편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한심한 작태를 보았던지라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메일을 통해 필자에게 날아 들어오고 있는 재벌 산하 단체의 ‘찌라시’성 보고서와 보수 지식인들의 글들. 경제민주화 하면 나라 잡는다는 말, 경제가 어려운데 재벌을 속박해서는 안 된다는 말, 일자리 늘려야지 경제민주화가 웬 말이냐는 말, 서민들의 시기심과 증오로 국민갈등이 생겼다는 취지의 말, 주로 이런 글들을 융단폭격 하듯 퍼부으며 여론몰이에 한창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도 자꾸 반복해서 듣다 보면 “정말 그런가?” 하고 국민들은 세뇌되기 십상이다. 그것을 노린 것이겠지. 경제민주화 입법 시즌이 다가오자 급기야 경제민주화 하면 재벌들이 우리나라를 떠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고 해대고 있다. 정부는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과잉 입법이 우려된다”고 화답한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돈보다 더 힘센 것이 있는가. 돈으로 물건도 사고, 사람도 사고, 언론도 사고, 법과 제도도 사고, 정부도 사고, 심지어 사람들의 혼마저도 산다. 연구소 간판을 걸고 재벌의 입 노릇 하는 단체, 돈 몇 푼에 재벌의 입맛에 맞게 지식을 파는 교수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재벌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사회 곳곳을 적시며 돌아다니면서 ‘재용’ 학자들로 하여금 학술적·전문적 견해의 탈을 쓰고 “지적 부정직”의 경계선상에서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주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작성·발표했다고 생각할 법한 삼성전자 찬양 일색의 보도참고자료를 냈다고 한다. 옛날부터 ‘삼성 사랑’이 남달랐던 공정위원장이다 보니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퇴임 후 갈 자리도 신경이 쓰이겠지.

필자가 2004년 가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고 금융연구원의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공무원 세계를 잘 아는 기자들이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퇴임 후 가실 자리 안 만드셨어요?”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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