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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기업부실, 몰랐나 숨겼나

등록 2016-06-05 19:25

지난 총선 이후 부실 대기업 문제가 갑자기 시급한 정책현안으로 떠올랐다. 가장 급한 건 해운과 조선이지만, 그 외에도 곧 터질 곪은 산업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에 빠져들고 있고, 가계부채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인데, 거기에 덧붙여 대규모 기업부실의 충격이 가해지면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1997년 환란 이후 20년 만의 거대한 경제위기다.

20년 전 환란 때는 김영삼 정권이 우리 경제를 죽이더니, 이번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우리 경제를 죽이고 있다. 민자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피에는 경제위기의 암세포라도 떠다니는 걸까? 보수정권의 몸속에는 경제위기의 디엔에이(DNA)라도 있는 건가?

대출액이 수십조원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기업부실이라면 거액 대출을 해준 채권은행들이 모를 리 없고 몰라서도 안 된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선박부문의 여신잔액이 작년말 현재 17조6천억원에 달했고 그중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액이 12조원을 넘는다. 산업은행도 조선사에 대한 여신총액이 12조8천억원을 넘고 그중 대우조선해양 여신액도 6조5천억원에 달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이런 거액의 여신을 제공한 조선사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상황을 전혀 모를 정도로 무능했나? 무관심했나?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이 지분의 31.5%를 보유한 자회사가 아닌가. 아니면 알고 숨겼던 것인가? 알았다면 왜 4월13일 총선 전까지 숨긴 걸까?

산은과 수은의 행장들은 박근혜 특제 낙하산 타고 내려온 인사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행한 짓은 박근혜에 대한 충성이었지 무엇이었겠나. 박근혜에게 정치적으로 누가 되지 않도록 숨기고 감추고 미루고. 그들뿐이랴. 기업을 평가하고 감사하는 회계법인들과 신용평가사들은 또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또 이들을 감독할 임무를 부여받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정원과 군이 충성하고, 검찰과 경찰도 충성하는데, 금융위와 감독원도 뒤지지 않게 충성해야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재난 창조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태였다. 원칙대로만 했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재난, 혹 사전에 막지 못했더라도 초기에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하기만 했더라면 확산을 피하고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던 재난, 그 후에 체계적이고 유능하게 대처하고 수습하기만 했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태를 일찍 마무리할 수 있었을 재난, 그것을 국가적 참사로 키운 박근혜 정부가 아니었던가.

그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은 다음번에 닥칠지도 모르는 국가적 위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겪었는데 또 메르스 사태를 맞았고, 가습기 참사를 당했다. 정부의 방관·방조·방기하에 무차별적인 묻지마 살인, 혐오살인, ‘사회·경제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비정규직 사망사고가 연일 터지고 있다. 다 일맥상통하는 대형참사다.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애시당초 막을 수 있었던 것을 못 막았다. 일찍 대응했더라면 부실규모가 수십조원이 되도록 커지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 구조조정을 잘해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막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잘 처리해야 하는데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꼼수만 부리니 연일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난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도 희생자 구조나 메르스 종식보다 대통령 보여주기와 정치에 더 관심이 많으셨지. 이번에도 경제위기 극복보다 ‘자기’ 정치에 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보인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외면하고 생뚱맞게 다음 대선 채비에만 몰두하신다. 경제위기가 절정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박 대통령께서 나타나셔서 “알아보고 파악하고 논의하고 돌아보고…” “조기에” “철저하게” 대처하라고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많은 국민들이 경제위기에 빠져 죽은 다음에.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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