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우리 민초들은 박근혜 정부를 정말 믿어도 되는 줄 알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나라는 정말 ‘행복한 나라’가 될 줄 알았다. 박근혜 정부는 참 신뢰가 가는(?) 그리고 이명박의 꿈인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되나 했다.
그러나 줄줄이 깨지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들, 특히 며칠 전 발표된 기초연금 방안은 ‘혹시나’ 했던 우리 민초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렸다. 박 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했던 말마따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제 국민들에게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예측가능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무려 4년 반이나 남은 박근혜 정부와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을 더 참혹하게 만드는 것은 이 문제를 대하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태도다. 무엇 하나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없으면서 ‘무늬만 하는 척’하는 공약이행법. 유수지 위에 짓겠다는 몇 채 되지도 않는 ‘행복주택’, 얼마 되지도 않는 ‘국민행복기금’, 말만 그럴듯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행복’이란 말이 난무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는 척.’ 반값 등록금도 어느 틈엔가 ‘실질적’ 반값 등록금으로 둔갑했다. 그러고는 다 했다고 하겠지. 아무튼 시작도 안 한 경제민주화는 벌써 다 했다고 했지? 정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기초연금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공약을 어긴 게 아니라는 궤변. 또 뒤돌아서서 혼잣말처럼 해대면 국민들이 적당히 알아들으라는 건지, 별일 아니니 그 정도면 됐다는 건지. 진정성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고 ‘나 했어’ 하는 식의 요식행위처럼 해치우는 대국민 사과. 오만한 건지, 아니면 서민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을 정도로 비겁한 건지.
또 공약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늘어놓는 변명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정부 재정 형편이 안 좋아 그렇다는 건데 과연 그게 이유가 되나? 이명박이 부자들에게 선물한 감세만 해도 줄잡아 연간 20조원에 이르고, 투자도 않고 일자리도 제대로 안 만들면서 떼돈만 벌고 있는 재벌들에 대한 각종 법인세 감면액도 매년 10조원 내외에 이르니 이런 것만 철회해도 연간 30조원 안팎의 추가 재원이 있는데 돈이 없다니. 나 먹을 거 다 먹고, 내 편 먹일 거 다 먹이고, 그러고 나니 너희들과 나눠 먹을 게 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말로는 중산·서민층의 복지를 떠들지만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는 부자와 재벌 복지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소득 상위 30%의 노인들을 기초연금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이지만,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 중에서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벌주듯 감액하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득수준도 낮고 국민연금도 충분하지 않은 그분들에게 20만원 전액을 지급한다고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더 드는 비용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나. 정부 계산에 따르면 지금은 연간 2000억원 내외, 2020년에 가면 6000억원, 2030년에 가야 4.3조원 정도 더 든다는데 그 정도 부담은 정책적 선택과 실행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부자 감세만 철회해도 재원은 충분하지만, 그 외에도 방법은 많다. 한 예를 들면, 현재 총급여액이 4776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금 보험료가 면제되고 있는데 총급여가 1억원을 초과하는 36만명(총급여자의 2.3%)에 대해 1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만이라도 추가로 보험료를 부과하면 총급여 1억원 이하의 중상층의 보험료 부담을 늘리지 않고서도 줄잡아 연간 2조원 정도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국민 상호부조적 성격을 고려하면 아주 잘사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만 더 부담하면 어려운 처지의 노인들에게 월 5만원, 10만원을 깎겠다는 그런 치졸한 정책은 안 해도 되지 않는가. 결국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비겁한 대통령의 궁색한 변명을 듣고 있노라니 앞으로는 과연 정직한 정책을 펴 나갈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박 대통령이 부자들, 재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서민과 중소기업들의 정직한 대통령이 되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헛된 꿈인가?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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