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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국정원장 보고가 우스워진 이유 / 김보근

등록 2013-10-13 19:1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웃음이 나왔다. 지난 8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 현안보고 때문이었다. 특히 남 원장이 보신주의와 면종복배(面從腹背)를 거론한 대목에서 쓴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남 원장은 이날 “북한 간부들 사이에선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고, 보신주의와 면종복배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남한에서는?’ 남 원장의 말이 누워서 침 뱉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동욱 찍어내기’가 떠올랐다. 지난해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이 저질렀던 댓글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검찰총장이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그 사건의 배후엔 청와대와 <조선일보> 그리고 남재준 국정원의 ‘삼각 공조’가 있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눈 밖에 난 인물은 무슨 수를 쓰든 찍어내는 이런 현실 앞에서 남한의 공직자들이 ‘앞에선 복종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는’ 면종복배와 무관할 수 있을까. 국정원장이 정보라고 할 것도 없는 내용으로 귀한 국회 보고 시간을 축내는 것 같았다.

다른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이 내부적으로 ‘3년 내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호언하고 있다”는 대목을 보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언제 어디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설명이 없다. 그러니 이건 첩보인지 정보인지조차 불분명한 얼치기 보고인 셈이다.

‘한미 연합 군사력과 비교할 때 북의 군사력이 큰 열세임은 다 아는 사실인데, 김정은이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다, 또다시 웃음을 짓게 됐다. 남 원장이 뒤이어 “김정은이 유럽식 잔디광장이나 테마파크 조성에 나서는 등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3년 내 무력통일’을 호언하는 인물이 테마파크 조성에 재원을 낭비한다? 그 돈을 군비 증강에 쓰는 것도 아니고?

한 나라 정보기관의 수장이란 사람이 언뜻 보기에도 상반되는 내용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고 국민의 대의기구에 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남 원장은 이 밖에도 “북한이 최근 영변 5㎿ 원자로를 재가동했다”고 보고했지만 국방부가 곧이어 “영변 원자로와 관련해 확인된 것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정원 내부에서 보고 내용을 검토조차 안 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철저히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결국 우스운 보고가 된 것은 그 목적이 국익 향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원 개혁 요구’라는 국민의 거대한 명령에 맞서 보려는 게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존재감을 부풀리려다 보니 앞뒤 안 맞는 내용들까지 마구 집어넣은 것이다.

국정원이 이런 때일수록 좀더 신중하게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보고를 했다면 어땠을까. 남 원장의 국회 보고 3일 뒤인 11일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북한 경제 건설의 현황과 전망’ 등의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냈다. 우 의원은 자료집에서 “북한의 대중국 교역 의존도가 90%에 이르고 지하자원의 97%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국회 보고에서 북한의 경제 현황 변화, 특히 북한의 대중국 경제 종속 현상을 보고하고 대안까지 고민했다고 생각해 보자. 국정원이 그렇게 조용하지만 설득력 있는 내용들을 말했다면, ‘국정원이 그래도 꼭 필요한 기관’이라고 인정하는 국민이 늘어났을 수 있다.

국정원장의 우스운 국회 보고는 국정원이 아직도 우리 국민의 수준을 낮춰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여전히 ‘댓글 공작 마인드’로 국민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댓글 공작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진정으로 국정원이 사는 길임을 남 원장이 하루빨리 깨쳤으면 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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