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16일 서울 서소문 검찰청사 서울지검장실. 정구영 서울지검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틀 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 사인에 대해 “물고문에 의해 숨진 것 같다”고 전격 공개해버렸다. 이 발표는 훗날 검찰과 경찰의 역관계가 뒤집히기 시작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물고문 사실을 감추려는 경찰의 허를 찔러 검찰이 선수를 친 것이다. 5공화국 내내 경찰의 물리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던 전두환 정권에서 경찰의 위세는 막강했으나 이 사건 뒤 ‘고문 경찰’로 낙인찍히면서 급격히 퇴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나중에 “물고문의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청와대를 앞세운 안기부의 은폐 주문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당시 안기부는 여전히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이런 권력기관 서열이 뒤바뀌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다. 이름이 바뀐 국가정보원이 햇볕정책의 집행자로 나서면서 권력기관보다 대북정보기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법치’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검찰이 단연 명실상부한 권력기관 서열 1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경찰로의 수사권 이양으로 검찰을 견제하려던 정권 차원의 시도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검찰은 ‘정치검찰’이란 지탄 속에 이름뿐인 권력기관으로 전락했다. 무리한 정치수사를 연발하면서 국민들 외면 속에 권한만 틀어쥔 공룡이 돼버렸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다시 서열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이 ‘전사’ 원장의 지휘 아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녹취록’ 공개 등으로 정국을 주도하면서 검찰은 국정원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가 됐다. 급기야 국정원 쪽의 항의 속에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전격 경질된 것은 검찰이 국정원에 무릎 꿇은 항복선언으로 기록될 만하다. 수사검사가 수사 대상에 의해 교체되는 치욕을 당한 셈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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