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 사장에서 나오는 윤석열 여주지청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법무부는 18일 감찰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여주지청장 등에 대한 대검찰청의 징계동의안을 검토한다. 이어 다음주 안에, 늦어도 이달 안에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수위를 확정한다. 검찰총장이 공석이지만, ‘수뇌부’의 뜻은 대검 감찰에서 이미 확인됐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인 윤 지청장에겐 정직, 부팀장인 박형철 부장검사에겐 감봉의 중징계다. ‘수사를 말았으면…’ 하는 상사의 뜻을 알아서 살피지 않고 곧이곧대로 수사를 한 데 대한 벌이니, ‘눈치껏 말 잘 들어라’고 조직 전체에 경고한 것이 된다. 징계안은 ‘조직 안정’을 위해 서둘러 마무리될 전망이다.
다음주 혹은 이달 안에는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취임도 예정돼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지만, 한편으론 “검찰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 또한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업무에 깐깐한 그의 성품이라면 윗선도 불편하겠지만, 일선 수사검사들도 이런저런 지시와 간섭을 많이 받겠다. 검사장, 부장 및 평검사 인사도 곧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검란 사태 등으로 불거진 검찰 조직 내의 ‘불안 요소’들은 이런 인사 과정에서 분산·조정·축소될 것이다. 당장 관심은 윤 지청장처럼 ‘성깔 있는 검사’들이 어디로 배치될 것인지다. 그렇게 해서 검찰이 새로 진용을 짜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채동욱 전 총장의 처참한 사퇴를 겪으면서, 검찰 조직은 권력의 ‘역린’을 건드리면 누구도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음을 목도했다. 이제 검찰의 수뇌부는 총장보다 더 윗선이다. 그렇게들 여긴다. 그 윗선이 원하는 검찰의 모습은, 적어도 이번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은 아닐 것이다. 상부의 속내를 찰떡같이 헤아려주는 검찰, 권력의 이해를 살펴 모른 척도 하고 앞질러 가려운 곳도 긁어주는 검찰, 필요하다면 무리해서라도 칼을 휘두르는 검찰이 이상형일 수 있다. 그런 검찰상을 유신시대나 5공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불과 얼마 전 이명박 시대의 검찰은 권력의 이해에 맞춰 법률적으로 무리한 기소를 밥 먹듯 했다. 범죄 혐의에 눈감았다가 나중에야 특검 등의 재수사 대상이 된 것도 여럿이다. 그렇게 눈치 빨랐던 검사들은 곳곳에 건재하다.
‘익숙한 과거’로의 복귀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건을 왜곡·축소·은폐했던 검찰의 과거사는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자연 생태계에서 보호색이나 위장색, 탁란 따위 동물의 온갖 ‘기만’이 발전하면서 그런 기만을 간파하는 상대 동물의 능력도 함께 진화하는 것처럼, 검찰의 어두운 역사에서 사람들도 배운 게 많다. 검찰 수사의 의도와 배경을 따지고 수사발표 시점의 정치적 맥락을 의심하는 따위 지금의 분위기도, 결국 과거의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중립을 장담한다면, 시험대는 눈앞에 있다. 검찰은 어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회의록 유출 의혹은 아직 수사중이다. 1년 전 공개연설에선 회의록을 줄줄이 읽고도 이제 와서 “‘찌라시’에서 봤다”며 유출 혐의를 부인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치권력의 거짓말을 검찰이 되풀이하는 게 된다. 검사장의 수사중단 압력은 없었다면서 엉뚱하게 그 지시엔 불응했다고 수사검사들을 징계하는 모순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도 눈 감고 아웅 하는 기만이다.
그런 기만은 큰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영국의 생명윤리학자인 조너선 글러버는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기간의 이득이다. 즉각 발각될 위험을 피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 인플레이션(으로) 관료 신념체계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고, 더이상 강압이나 거짓말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스탈린 폭정에 대한 말이지만, 두렵게도 우리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