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 어르신인데….” 엊그제 금요일 아침 오랜만에 티브이를 켜고 뭐 재미있는 게 없나 하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상한 소리가 필자의 귀를 확 잡아끌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채널에이>라는 문제투성이 종편의 10시 뉴스를 담당하는 천모라는 자가 하는 말이 정말 가관이었다.(욕하려고 놈 자(者) 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필자 생각에 이분을 뉴스 앵커라거나 기자라고 하면 뉴스를 다루는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인을 욕보일 것 같아 그러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엉겁결에 듣기 시작했던 터라 그대로 받아 적듯 전할 수는 없지만 요지인즉슨 일개 신부가 감히,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이 가세해서 무례하고 버릇없이 대통령에게 “퇴진” 운운해서 되겠냐는 거였다. 국민들이 못되게 구니까 일본에서도 우리 대통령에게 못되게 군다고 개탄하면서 그 ‘못된 국민들’을 꾸짖는 투였다.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갈 줄은 알았지만, 박정희 유신시대 정도가 아니라 조선시대까지 되돌아갈 줄은 몰랐다. 아무리 수구언론이라 하더라도 <동아일보>라고 하면(물론 동아일보는 채널에이와 상관없다고 발뺌할지도 모르겠지만) 연륜이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언론기관 중의 하나라고 자부할 텐데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이 정도라니.
정보기관과 군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3·15 부정선거와 유신체제하의 조직적 관제 선거왜곡 이래 가장 심각한 국기문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라면 선거에 영향을 끼쳤든 아니든 당연히 철저히 조사해서 진상을 규명해야 마땅한데,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여태 어떻게 다루었나. 대통령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하는 투로 무책임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수사팀을 거세하는 등 수사 방해만 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드는 것 같았고, 새누리당의 의원이란 자는 항의하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둥 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또 “박창신 신부는 사제복을 입은 혁명전사”라며 종북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박창신 신부님이 대통령 퇴진을 말한 것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거다. 대통령이 발뺌만 하면서 덮으려고 할 게 아니라 책임있게 나서서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하여 국민들에게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게 밝히라는 거다.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라는 꾸지람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수구언론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떳떳하다면 밝히면 될 것을.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이 문제에, 특히 대통령 퇴진 운운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떳떳하게 밝히지 못할 무슨 숨은 사연이 있거나 아니면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무슨 숨은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되, 열등감이 있다면 도대체 무슨 열등감일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열등감일까. 그래서 박 대통령이 그토록 열심히 역사를 지우려고 애쓰고 있는 건가. 하늘 같은 아버지에게 느끼는 딸의 열등감일까.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박정희 따라하기를 하는 건가. 무언가 국민들에게도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국민과의 소통을 두려워하는 걸까. 선거 전에는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더니 그래서 표변한 건가.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감이 없는 모양이지.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는 이명박의 열등감의 표현이었다. “너희들은 떠들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하는 것은 박 대통령 식의 열등감의 표현인 것 같다. 이명박이 국민과 소통을 끊었고, 박 대통령도 국민과 소통을 끊고 있다. 열등감을 버리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래야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 이명박 정부의 말로를 잘 보지 않았는가.
이래서 무슨 창조경제를 하겠나. 경제 얘기는 해서 무슨 소용인가. 답답한 마음에 경제학자가 자꾸 정치 얘기를 하게 된다. 결국 대통령이 문제다. 나이 60에 이순(耳順)이라고 했는데, 왜 국민들의 소리에 그리도 까칠하게 구시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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