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다시 하라는 것은 혁명을 하자는 말이니까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이러한 해석 자체에 이번 선거의 과오와 그 과오를 수습하려는 태도의 과오까지가 완전히 포함돼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니까 그런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선거가 ‘부정’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올바른 선거는 혁명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이 만회하기 어려운 착오를 그나마 수정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시인 김수영이 1967년 6월15일치 <동아일보>에 기고한 ‘수습할 사람은 대통령뿐’이라는 글의 일부다. 같은 신문 1967년 7월25일치에 실린 ‘격정적인 ‘민주’의 시인-칼 샌드버그의 영면’ 그리고 <경향신문> 1967년 10월9일치에 기고한 ‘성격 있는 신문을 바란다’와 함께 <실천문학> 겨울호가 발굴 소개했다.
1967년 6월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온갖 부정과 탈법으로 얼룩졌다. 박정희가 3선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를 위해 관권을 동원하고 금품을 살포하는 등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야당과 대학생들은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김수영의 글은 당시 동아일보가 ‘비상시국을 풀자면’이라는 제목 아래 각계 인사 10명에게 요청한 설문에 대한 답으로 작성된 것이다.
‘성격 있는 신문을 바란다’라는 글에서 현실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건네는 시인의 고언 역시 귀담아들을 만하다. “신문이 지상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회라야만 현실적 폭동의 위협을 면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말해서 신문이 지면상의 폭동-즉 자유-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은 현실의 폭동을 조장하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바라는 외침을 종북으로 색칠하기 바쁜 지금 언론의 행태를 겨냥한 일침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한국 언론 자유의 출발은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는 데 있다”고 갈파했던 시인의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지는 이즈음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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