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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대통령만 안녕했던 1년을 보내며

등록 2013-12-22 18:42수정 2013-12-24 09:33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년 참 많은 일을 하셨다. “국민을 잘살게 하는 생각 외에는 다 번뇌”라는 수행승의 마음으로. 또 박정희를 다시 우리 역사의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매김시키고 자랑스런 유신의 역사를 되살리려고 새마을운동도 부활시키고 역사 교과서도 뜯어고치고 유신시대의 공신들도 다시 불러내고 동상도 크게 세우고 ‘반신반인’으로 신격화하는 작업도 하셨다.

모두 나라 잘되고 국민들 잘살라고 하는 일인데,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이 불통이네 유신독재네 선거부정이네 심지어는 퇴진해야 하네 하면서 망언을 해대고 있으니 “나라의 최고 어르신이신” 대통령께 이 무슨 못된 짓들인가. 많이 언짢으셨을 텐데도 그런 ‘못된’ 국민들과 “정쟁만 일삼는” 불순한 사람들에게는 일절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 대통령 덕에 떳떳하게 국민 구실 하게 된 사람이 참 많았다. 파지 줍는 노인들은 대통령께서 지하경제를 적극적으로 양성화해주신 덕분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떳떳한 국민으로 성스러운 납세 의무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부자들은 세금 부담이 줄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하는 매질 덕에 철도노조원들은 새 삶을 살게 되겠지. 기초연금 대상을 확 줄여주신 덕에 많은 노인들이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고통 없이 털 뽑는 방식’으로 세금을 거두신 덕에 서민들은 세금 내는 줄도 모르고 세금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지방 대학을 실제 6년제처럼 되도록 만들어주신 덕에 지방 대학생들은 취직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고, 반값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없던 것으로 해주신 덕에 자라나는 대학생들이 의타심을 버리고 자립심 강한 청년으로 클 수 있게 되었다. 4대 중증질환의 100% 의료보장 약속을 철회하신 덕에 국민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될 테지. 또한 창조경제를 비판한 사람들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과오를 스스로 깨칠 기회도 주셨다. 이렇듯 박 대통령이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씨 덕분에 우리 민초들은 ‘안녕’한 거다. 박 대통령께서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밝히신 그 큰 복지의 포부는 그냥 “아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한 채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철도와 의료 민영화 물꼬를 트는 용단을 내리시어 앞으로 국민들이 떳떳하게 ‘제값 주고’ 기차 타고 ‘최선의’ 진료 혜택을 마음대로 찾아다닐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재벌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푸시고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은 대충 유야무야 해주셨으니 이제 우리 재벌들은 우리 경제를 창조의 탄탄대로로 이끌어 나가겠지. 절대로 재벌들을 봐주기 위해 그러신 게 아니다. ‘경제활성화’를 하여 서민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그러신 거다.

대통령께서 국민들을 걱정하시는 게 어디 경제문제뿐인가. “집권당의 검찰총장”이니 야당이나 국민들이 신경쓰지 않게 미리미리 알아서 잘라주셨고, 또 김정은이 국정원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질 테니 고지식한 수사팀장을 갈아치워 주셨다. 또 국정원이든 군이든 또는 심지어 청와대든 지난 대선 때 정치공작한 일과 손톱만큼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람들은 지체 없이 속시원하게 잘라주셨다. 그 사람들은 “윗선의 지시 없이” 그런 못된 짓을 한 나쁜 사람들이니까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으셔야지. 어디 그뿐이랴. 국민들이 “혼동할 우려”가 있음을 걱정하시어 손석희의 <뉴스9>을 중징계해 주셨다.

또 “기본 자세가 안 된” 어린 학생들이 대자보라는 불순한 짓에 빠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으시고 교장으로 하여금 교육자로서의 본분에 구애받지 않고 대자보를 붙인 학생을 경찰에 신고하도록 인도해주시고, 면학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해 대자보를 금지하도록 교육부를 통해 전국의 학교에 지침을 시달하시는 자상함도 보여주셨다.

지난 1년은 참 ‘안녕’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다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절규하는 청년들도 같이 ‘안녕’했으면 좋겠는데. 새해에는 그런 날이 올까?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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