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대통령만 안녕했던 이 나라 꼴이 작년 한 해로 끝나지 않겠다. 박정희 연두기자회견을 보는 듯했다. 질문한 기자들이나 답한 대통령이나 국민들은 안중에 없었다.
국민들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받아 적을 하교사항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 이런 당연히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 준비된 여유로 대통령의 품격(?)을 지키면서 비서관들 대하듯 국민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한 대통령. 기자회견장이라면 당연히 있었어야 할 곤혹스런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복지도, 대학생들의 안녕 대자보도,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필자가 듣기에도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알지 못할 대통령 답변에 대해서도 후속질문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말한 게 별로 없고 물어본 것도 없으니 궁금증만 더해 간다. 우리 같은 민초들이야 그 내막을 알 길이 없지만 속말로 “박정희 때 했던 식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는 기자회견 뒤 춘추관 기자실에 들른 대통령에게 어느 여기자는 “대통령님께 안기고 싶어요” 하면서 대통령에게 안겨 기념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니 우리 언론 수준이 정말 이 정도로 치졸한 ‘애완견’ 수준까지 떨어졌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 하더라도 질문 가능한 거리에서 대통령을 본다는 게 일년에 한두번이나 되나. 기자라고 하면 당연히 그런 천금 같은 기회가 있을 때 대통령에게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려고 악쓰듯 질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우리 국민이 언론에 기대하는 거다. 기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개인적인 아양을 떠는 데 그런 천금 같은 기회를 써버린 기자라면 선진국 언론사에서는 당연히 파면감이다. 하지만 그 기자는 그 사진을 가보처럼 모시면서 자랑하고 다니겠지. 아마 청와대 춘추관에서는 충성심 많은 기자로 특별대우를 받을 거다. 그런 사람이 왜 기자를 하나. 아마 그 기자는 다른 목적이 있는지도 모르지. 윤창중처럼? 그러면 독자들은 안중에 없는 게 당연하다.
기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은 또 그게 무언가. 국민들을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떼나 쓰고 유언비어나 퍼뜨리는, 그래서 제압해야 할 군사작전의 대상 정도로 여기는 태도가 하나도 안 바뀌었으니. 하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수업이래야 박정희에게서 배운 것밖에 없으니 대통령의 태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하지만 정책만은 그래서 안 되는데 정책마저 박정희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국가정책이 박정희 프레임을 못 벗어나면 국가적 재앙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알고 있는 것은 10년 가까이 되뇌던 ‘줄·푸·세’밖에 없으니 결국은 이명박의 747을 뒤집어 놓은 것과 진배없는 474(4% 성장, 70% 고용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내놓았다. 내막을 들어보면 규제완화, 부동산 활성화, 민영화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뒤집어 나는 474 비행기가 과연 뜨기는 할는지.
경제혁신과 창조경제의 토양이라고 할 경제민주화는 폐기처분하고, 전선 곳곳에 병력 배치하듯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창조경제 혁신부대를 주둔시켜 올해에는 4부 능선까지, 내년에는 8부 능선까지, 그리고 3년 후에는 고지에 깃발을 꽂아라. 군사작전 하듯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밀고 나가겠단다. 이런 지극히 비창조적이고 비혁신적인 프레임으로 창조경제와 혁신이 성공할 수 있을까.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고 정상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 시대에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과연 무엇인가. 우선 ‘상식의 상식화’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의 상식’과 ‘국민들의 상식’이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국민들이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 “떼”심이 곧 건전한 상식에서 나온 민심이란 걸 가르쳐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피할 수 없는 기본적인 속성이고 민주주의의 한계다. 우리 모두, 다음 세대까지, 안녕한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알아서 해주시길 기대하지 마라. 그건 헛된 꿈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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