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보도 화면 갈무리.
[싱크탱크 시각]
최근 두 가지 동영상을 봤다. 하나는 충격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상적이었다. 앞의 충격적인 동영상은 사무실에서 팀장이 직원들을 거리낌 없이 때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텔레마케터 업무를 하는 이곳은 성과급제로 운영되는 아웃소싱업체로 보인다. 10년 가까이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실적 향상이 예전만 못해지자 팀장이 영업 독려라는 미명 아래 폭력을 써왔다. 벌로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리자’고 구호를 외치게 하기도 하고, 팀장이 우산으로 직원의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리기도 한다.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모두 여성들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 이어지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대체 왜 그들은 맞고만 있었을까?
다른 동영상은 스위스 사업가와 독일 예술가가 2008년 만든 <기본소득, 문화적 충동>이란 다큐멘터리다.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복지에 비판적인 쪽으로부터는 극단적인 사례로 폄하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영상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전한다.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시작해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줘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부터 현대사회에서 일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이런 가운데 기본소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를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기본소득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무실 폭력 장면이 겹쳐진다. 팀장의 폭력에 수년간 시달렸던 이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굴욕적인 상황이 이어졌을까.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적 어려움을 악마에 비유했다. 악마가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듯 경제가 어려우면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의 사람부터 희생된다. 센은 결과와 수치에만 집중하는 양적 성장을 경계하고, 대신 ‘사람다운 삶’을 우위에 둔 양심적인 경제관점을 지향했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마르티아 센의 관점은 청년, 비정규직, 실업자, 해고자, 영세자영업자 등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준다. 사회적 안전망을 주장하는 아마르티아 센의 대안에는 기본소득제도 당연히 포함된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사람에게 기초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나온 개념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20만원도 일종의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유아 보육수당도 특정 연령대의 아동에게 주는 기본소득이기도 하다.
일요일인 23일 서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기본소득공동행동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국제조직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한국지부다. 기본소득공동행동은 2016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열어 사회적 관심을 넓혀갈 계획이다. 또한 서명운동 등 실천 활동에 역점을 둬서 기본소득운동을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기본소득은 삶의 불안정성을 줄여주고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노동과 활동을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막대한 재원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많다. 또한 기본소득만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풀 수는 없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처럼 우리 삶터의 최소한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이 이어졌으면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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