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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무관심’ 대신 ‘희망’ 택한 홍콩 청년들 / 이현숙

등록 2014-10-05 18:37수정 2014-10-28 23:47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다양성이 존중되고, 노동의 대가는 정직하며, 모두가 균등한 삶의 질을 보장받는다. 국가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 개인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는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라고 지레 손사래 칠 필요는 없다.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의 저자 나유리씨가 남편과 헬싱키에서 2007년부터 7년간 살면서 평가한 핀란드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부부는 이 책에서 핀란드인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탐색하고 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핀란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일을 하는 한, 가난한 사람은 없으며 약자에 대한 차별은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다문화 가정이나 유학생들조차도 행복하다. 책에 소개된 일본 유학생은 “출산, 교육, 결혼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다. 경력을 쌓기 전, 돈을 모으기 전, 이 모든 것을 ‘아직’ 학생인데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국인 한국과 일본을 그리워하면서도 핀란드를 선택한다. 한국과 일본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30세대를 빗댄 ‘88만원 세대’에서 이제는 삼포세대(연애·출산·결혼 포기)를 넘어 사포세대(인간관계도 포기), 오포세대(내집 마련도 포기) 등 포기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웃 일본에도 비슷한 뜻의 ‘사토리 세대’(여행·자동차·사치품·음주·연애는 물론 돈과 출세에도 무관심)가 증가하고 있다.

비단 일본과 한국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세계 여러나라 청년들의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오큐파이(점령하라) 센트럴 운동을 이끈 홍콩 청년들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중국 정부에 민주적 선거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1997년 주권이양 뒤 중국에서 자본과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집값은 4년 동안 두 배 넘게 올랐다. 중국 유학생은 10년 새 10배나 늘었고, 졸업 뒤 홍콩에서 취업한 중국 학생도 3년 동안 2배나 늘었다고 한다. 홍콩 청년들은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지고 급등한 집값으로 주거 문제 해결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은 홍콩의 기존 체제 유지와 자치권을 50년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 사람의 눈엔 이런 약속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초 홍콩에서 4년간 산 경험이 있다. 당시 홍콩 사람들의 전체적인 생활수준이 우리보다 더 높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영국령이었지만 주민 자치와 법규로 운영되는 개방 사회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택지가 다양한 열린 사회라는 점이었다. 홍콩 사람들은 먹을거리, 입을거리, 주거, 교육, 의료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자신이 처한 여건에 맞춰 선택할 수 있었다. 소득이 매우 낮아도 기본생활은 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였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홍콩 청년의 표정은 밝았고 희망차 보였다. 그런데 이번 오큐파이에서 청년들이 내건 슬로건에는 “희망이 없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홍콩 오큐파이 운동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가늠하긴 어렵다. 하지만 홍콩 청년들이 스스로 기대수준을 낮추고 미래를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에 희망을 걸고 행동에 나선 홍콩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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